[127호]물량팀은 산재 승인 어떻게 받나요?

[상담실]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4-01-18 12:38
조회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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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욱  바른길 노무사 사무소  공인노무사

“조선소 작업 중에서 부담이 되지 않는 업무는 거의 없는 편이며, 대표적인 직종인 용접과 취부, 배관 등은 거의 모든 관절에 부담을 주는 업무이다.
기본적으로 자세와 중량물 취급, 순간적인 과도한 힘의 발생, 반복성, 지속자세 등이 문제가 되는 업무로서 작업강도가 높은 업무들이 많다.” 이는 나의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2019년 7월 근로복지공단이 작성해서 발표한 “6대 근골격계 상병 업무 관련성 추정의 원칙 적용기준”에 명시되어 있는 문구이다.
이에 조선소에서 용접사, 취부사, 배관공 등으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였음이 확인되면 회전근개 파열이나 요추간판탈출증 등이 비교적 쉽게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된다.

그리고 추정의 원칙은 근골격계질환뿐만 아니라, 직업성 암에도 적용된다. 따라서 석면에 의한 원발성 폐암, 석면에 의한 악성중피종, 탄광부·용접공·석공·주물공에서 발생한 원발성 폐암, 벤젠에 노출되어 발생한 골수성백혈병 등은 재해자가 해당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직종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였음이 확인되면 업무 관련성 전문조사(역학조사) 없이 곧바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심의 의뢰가 되고, 개인적 질환으로 볼만한 다른 사정이 없으면 대게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된다.

문제는 추정의 원칙에 해당하는 직종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고도 그 사실이 서류로 확인되지 않아 이를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조선소 물량팀으로 근무한 노동자들이 그렇다. 조선소 물량팀 노동자는 직영(원청) 소속도 아니고 협력업체(하청) 소속도 아닌 상태로 팀장을 따라다니면서 자신의 주특기에 따라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일을 한다.

예컨대 작업 물량이 많아 정직원(업체에 소속을 두고 있는 인력)만으로는 시간 내 작업을 완수하기 어려운 업체에서 팀장한테 연락해 지원을 부탁하면 팀장은 자신과 같이 다니는 노동자들을 데리고 가 일명 돈내기(일종의 도급) 형태로 작업을 수행하고, 물량팀 노동자는 그 기간 팀장으로부터 일당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고용 관계의 형태만 보면 물량팀 노동자도 산재보험 당연가입대상에 해당한다. 하지만 조선소에서 물량팀 노동자는 대부분 4대 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채로 일을 하기 때문에 4대 보험 가입 이력을 떼보면 서류상으로는 아무런 소속이 확인되지 않고 깨끗한 종이만 나온다.

상담을 하다 보면 조선소 물량팀 노동자로 평생을 일하다가 근골격계질환에 걸린 사건은 물론 직업성 암이나 간질성 폐질환과 같이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중대 질병에 걸렸거나 그로 인해 끝내 사망에 이른 사건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일한 내용을 들어보면 당연히 산재로 인정될 것으로 보이고, 또 인정되는 것이 마땅할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사건 성공에 대한 가능성은 서류상 명확하게 업무 이력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애매모호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이런 사건의 경우에는 작업 중 촬영했던 사진이나 작업복 사진, 직종 관련 자격증, 통장에 입금된 내역과 입금자명 등등 업무이력을 입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긁어모아야 하지만 심지어는 이마저도 없거나 통장 입금 내역과 입금자명이 일정치 않아 증거로서의 효력이 미미할 때가 많다.
결국 이때 재해자 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업무이력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쥐어짜 제출하고, 전문조사위원들과 업무상질병판정위원들이 이를 인정해주기를 기도하는 것뿐이다.

위원들이 보고 그럴듯하다고 인정할 수 있게 자료를 잘 정리해 보여주고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은 사건을 수임한 내가 해내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다 보니 일명 ‘위원빨’이라는 게 없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떠한 재해가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 있는 업무상 질병이냐 아니냐가 판정위원이 누구냐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은 합리성과 거리가 멀다.
산재 사건의 입증책임과 관련해서 재해노동자의 소속에 따라 입증책임의 무게가 오락가락하는 억울함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은 1년 전 소식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조선소 물량팀 노동자들의 산재 사건을 마주할 때면 산재 입증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지우는 것이 정답일까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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