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호]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면 회사에 불이익이 가나요?

[상담실]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2-04-21 17:36
조회
1386
게시글 썸네일

김남욱  바른길 노무법인 공인노무사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이 훌쩍 지난 일이다. 2020년 여름, 건장한 체격의 20대 청년이 업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청년의 아버지는 곧바로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건의 재해 경위를 청년이 다른 노동자와 함께 장비를 들고 서 있는 작업을 하던 도중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진 것으로 조사했다.

재해자의 아버지와 친척이 사건 자료를 들고 상담실은 찾은 것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최초요양급여 신청을 불승인 받은 후였다. 재해자에게 ‘뇌동정맥기형’이 있었고 재해가 발생하기 전날부터 일주일은 ‘여름휴가’였기 때문에 업무상 사유보다는 개인적 요인에 의해 뇌출혈이 발병하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이 불승인의 주된 사유였다.
일반적으로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등 뇌혈관과 심장질병은 과로성 재해로 분류된다. 그리고 이러한 질병이 산재 즉,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판단함에 있어 근로복지공단이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요인은 재해발생일 이전의 업무시간이다.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르면 재해발생일 전 12주 동안의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거나 재해발생일 전 4주 동안의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해당 질병이 만성적인 과로에 의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업무시간이 60시간에는 미달하나 52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교대제, 휴일 부족, 유해 작업환경, 고강도의 육체노동, 정신적 긴장 요인 유무 등이 업무부담을 가중할 수 있는 요인으로 고려된다. 또한 재해발생일 전 1주일 이내의 업무량이나 시간이 그 이전 12주 동안의 1주 평균보다 30퍼센트 이상 증가된 경우 해당 질병이 단기간의 집중적인 과로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재해발생 전 24시간 내 업무와 관련된 돌발적인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돌발적 과로 요인에 의해 해당 질병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소개한 사례의 경우에는 만성적인 과로 또는 돌발적인 과로 요인이 뇌출혈을 유발하였을 것으로 보였다. 청년은 뇌출혈이 발생하기 전 일주일을 여름휴가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1주 평균 업무시간이 56시간을 초과하는 수준이었고, 건설 관련 기능 종사자에 해당하여 육체적으로도 강도 높은 업무를 수행하는 직종에 속했을 뿐만 아니라, 담당 업무가 차량이 통행하는 도로 위에서 하수도를 점검하고 보수하는 것이어서 업무 중 교통사고의 위험으로 인해 정신적 긴장도도 높을 것으로 보였다.
더욱이 이 청년의 경우에는 고중량을 장비를 들고 버티는 업무를 수행하던 도중에 급작스럽게 뇌출혈이 발병하였던 것이기 때문에 돌발적인 과로 요인에 의해 뇌출혈이 발병하였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사 과정에서 청년의 아버지가 작성한 사실확인서에는 청년이 했던 업무가 그리 힘들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답변들이 더러 있었고 결국 근로복지공단의 재해조사서에는 업무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는 것 외에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진술한 이유를 물었을 때 청년의 아버지는 ‘혹시나 회사에 피해를 줄까 봐.’라고 답했다.

다행히 이 사건은 심사청구 과정에서 육체적으로 강도 높은 업무를 하였다는 점을 업무부담 가중요인으로 추가 인정받고, 재심사청구 과정에서 뇌출혈 발병 직전 청년이 수행하고 있었던 업무가 고중량의 장비를 들고 버티는 것이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해서 결국 업무상 재해로 승인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 외에도 상담을 하다 보면 산재 신청을 하기에 앞서 회사에 피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를 먼저 묻는 노동자들이 간혹 있다. 그리고 이처럼 회사에 피해가 될까 우려하여 업무시간이나 내용, 강도 등을 근로복지공단에 실제보다 약하게 진술하는 경우도 있다.
오랜 시간 회사와 쌓아온 정(情)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 마음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노동자가 산재 처리를 한다고 회사에 피해가 가는 부분은 없거나 미미하다. 먼저 산재를 신청하면 매달 회사가 납부해야 할 산재 보험료가 오를까 걱정하지만 상시 노동자 30인 미만 회사에는 개별실적요율제도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산재가 발생해도 보험료가 오르지 않는다. 특히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신청하는 재해가 사고 아닌 질병인 경우에는 회사의 규모에 상관없이 보험료가 할증되지 않는다.
산재 사고가 발생한 경우 상시 30인 이상 노동자를 사용하는 회사에는 개별실적요율이 적용되어 다음 해 보험료가 인상될 수도 있지만 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보험료가 많지 않은 경우 즉, 중대사고가 아닌 경우에는 보험료 인상분도 크지 않다. 또한 재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회사의 노동시간 위반, 휴게시간 미준수 등은 특별한 사정 없이 고용노동청에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중대사고가 발생하거나 연중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 회사가 아닌 경우 고용노동청의 특별 감독대상이 될 가능성도 낮다.
반면 회사는 산재가 발생하면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는 것과 관계없이 관할 고용노동청에 1개월 내 산업재해발생보고를 해야 하는데 이를 미준수하였다가 적발되면 일반재해의 경우 1차에 700만원, 중대재해의 경우 1차에 3,0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그렇기에 산재를 신청해서 근로복지공단이 재해자에게 보험급여를 지급하도록 하여 공상으로 병원비 등을 지출하지 않고, 산업재해발생을 보고해서 불필요하게 과태료까지 부담하는 위험을 피하는 편이 오히려 회사에게는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산재 신청은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이고 회사는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못해 자신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가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재해를 보상하여야 할 책임을 줄이기 위해 매월 산재 보험료를 내는 것이며, 산재 신청으로 회사가 입는 불이익은 미미하거나 없는 반면 산재가 불승인되었을 때 노동자가 스스로 안아야 할 부담은 훨씬 크다. 그리고 어떤 사고나 질병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점은 산재 보험급여를 청구하는 노동자가 입증하여야 하므로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본인에게 유리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여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회사에 피해를 줄까 하는 불필요한 걱정으로 산재 신청을 망설이거나 실제 업무시간, 내용, 강도 등을 축소하여 진술하는 바람에 불승인을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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