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호]누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가?

[초점]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7-02-17 14:50
조회
1916
게시글 썸네일
김종하 ( 노동건강사업단 위원장)

업무상 재해로 죽은 노동자들의 삶

사람이 살아가면서 위험이 뒤따르는 일은 많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위험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다 죽는 것도 그 많은 위험 중 하나일 뿐일까? 수많은 위험 중 하나일 뿐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인가 !
더 심하게 말하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다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너무나 뻔한 질문 같고, '아니다‘는 뻔한 답변이 예상되지만, 오히려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더 많다.
작업 중 사고가 발생 한 후 운명론으로 위로를 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더구나 운명이므로 받아 들이고, 새 삶을 살라고 한다. 그렇게 받아 들이라고 강요까지 한다.
그리고 사고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더해 지면서 작업자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는 질책까지 보태진다.
어느새 자본은 면죄부를 얻었다.

2008년 1월 7일 경기 이천시에 있는 코리아2000 냉동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용접 작업 중 불이 났고, 40명이 사망했다. 그 당시 일을 하던 50여명 중 대다수는 새벽시장에서 일거리를 구한 일용직 노동자들이고, 사망한 노동자 중 13명은 외국인 노동자였다. 돈을 벌기 위해 떠돌던 사람들이 몰살을 당했다. 이들은 작업장 내에서 자신이 맡은 일만 해왔기 때문에 서로 간에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고, 다만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던 중 화재로 인해 피어오른 우레탄 가스에 질식되었다. 프레온 가스, 암모니아 가스, LP가스통이 폭발하면서 사망했다.
화재가 난 창고의 건축주는 코리아 2000이라는 회사이고, 공사 시행자, 건설사는 물론이고,  설계, 감리자도 모두 똑같은 코리아 2000이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맡은 일을 열심히 하던 노동자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2011년 7월 2일 새벽 4시에 경기도 고양시 이마트 탄현점 기계실에서 터보 냉동기 점검작업을 하던 박기순씨 등 인부 4명이 쓰러져 있는 것을 기술관리팀 직원이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모두 숨졌다. 냉매가스에는 인체에 유해한 염소가스가 포함돼 있어서 조금만 마셔도 치명적이고 일반 마스크는 소용이 없다. 죽은 인부 4명 중에는 22세의 서울시립대학교 1학년인 황승원 학생이 있었다. 그는 군 전역 후 등록금 마련을 위해 냉동기 수리업체에 취업하였고, 그날 새벽 일을 하던 중 죽었다.

2016년 5월 28일에는 서울 2호선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만 19살 김군이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여 144만원을 받았으며, 회사에서 제공하는 하루 식대 4천원 안에서 해결하기 위해 컵라면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끼니를 해결하면서 대학진학을 위해 한달에 100만원씩을 저축해 왔는데, 이날 스크린 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혼자 점검에 나섰다.
가해자가 없는 피해자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2인1조 작업 규정을 김군이 어겼다는 코레일의 해명을 듣고 있으면 분노가 치민다. 그들은 1인1조 일을 하더라도 2인 1조로 일했다고 허위 서류를 만들어 온 자들이다.
자기의 노력보다는 남의 노력을 빼앗아 살아가는 자들을 약탈자라고 부른다.
주로 위험하거나 힘든 일에 하청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산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더구나 그들의 죽음은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 법적 책임 범위로 따지면 적은 보상가격을 정할 수 있다는 협박으로 말이다.

재해는 노동자의 삶을 파괴한다.

산재를 당한 뒤에도 문제다. 책임을 물을 만한 사용자를 찾기도 어렵고, 산재를 인정 받는 것 조차 어렵지만, 재해를 당한 이후에 불구, 장애인이라는 딱지가 붙고 나면 취업 조차 하기 어렵다.

부산경남경마공원 마필관리사로 7년을 일했던 박씨는 2011년 11월 서른넷 젊은 나이에 경주 보문단지 한 모텔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그는 자주 말에서 떨어지고 말굽에 차이면서 고통을 견뎌야 했는데, 그가 고통을 끝내기 위해 세상과의 이별을 선택했다. 그는 “한 달에 최대 열두번 당직을 서고 말을 타다 떨어져 골절상을 입고 뇌진탕에 걸렸는데도 해고위험 때문에 제대로 치료도 못했다”는 유언을 남겼다.
어느새 노동현장은 '산재공화국', '전쟁터'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게 되었고, 잦은 사고는 노동자들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도록 강요한다.
산재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 스스로 지게 하거나 산재를 은폐하는 자들, 그들은 타인의 노력을 빼앗는 약탈자일 뿐만아니라, 타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악귀들이다.
산재사고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는 건설업과 하청노동자에게 재해 위험을 떠넘기는 조선업계의 산재사고 은폐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범죄자, 약탈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고, 사람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희망이 없다.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자본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분통을 넘어서는 분노로 대응해야 한다. 재해 사업장에서 분노를 조직한 투쟁을 전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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