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호]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가 함께 투쟁하는 조선소를 꿈꾼다

[활동 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3-07-21 20:07
조회
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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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


 

조선소 인력난이 심각하다. 지난 5~6년 불황기 동안 7만 명 넘는 하청노동자가 대량해고되었는데, 조선업 호황기가 돌아왔지만 떠난 노동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근본 원인은 낮은 임금 때문이다. 조선소 직접 생산의 80% 이상을 하청노동자가 담당하는데, 20년~3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이거나 조금 더 받는 저임금에 한 가족의 생계유지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도 조선소를 떠나 건설 현장이나 육상플랜트로 옮겨가고 있고, 젊은 노동자들은 아예 조선소에서 일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와 자본은 하청노동자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고용을 확대해 인력난을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최근 조선소에 이주노동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의사소통 문제, 중대재해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는 직종과 경력과 기능에 관계없이 무조건 최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정주노동자와 달리 설, 추석, 여름 휴가비나 성과금도 못 받는 차별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 역시 조선소를 떠나고 싶어 하지만, 사업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 이동을 할 수 없게 만든 고용허가제 때문에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조선소 하청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이주노동자와 어떻게 함께 투쟁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할 것인가는 점점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이주활동가 여섯 명의 이야기를 담은 <곁을 만드는 사람>은 매우 반가운 책이다.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이주활동가의 이야기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삶을 넓고 깊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 도입과 투쟁의 역사 또한 그 맥락을 더 잘 알 수 있었다.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미등록노동자라고 말해야 하는 거야”
얼마 전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 앞 집회에 다녀온 조합원이 한 말이다. 이 자체로도 큰 깨달음이지만, 우리는 ‘미등록’의 삶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책을 읽으며 ‘미등록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불안하며 비인간적인지 마음으로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다.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하면서도 정주는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업장 이동마저 제한하고 있다. 그 결과 ‘미등록노동자’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조선소에서도 “이주노동자 몇 명이 잠적했다”라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하청업체는 이들이 무언가 불온한 의도와 계획을 실행한 것처럼 말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잠적했다는 노동자들의 앞에 놓여 있을 험난하고 불안한 삶에 더 마음이 가게 된다.
‘단일민족’은 하나의 신화이자 허상일 뿐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반면 현실에서 여러 나라 이주민들과 자연스럽게 함께 사는 것은 아직 익숙한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 20년 넘게 다양한 이주노동자와 어울려 활동하며 살아가면서 이제는 국적의 같고 다름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주활동가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미리 보게 된다. 이주노동자의 정주를 허용하지 않는 정부 정책은 계속 유지될 수 없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이주노동자,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며 그것은 자연스러운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차별’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이슈이자 뜨거운 쟁점이다. 그런데 차별에 대해 올바른 입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갖추는 것보다 더 먼저 필요한 것은 차별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을 키우는 일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차별과 마주하는데, 그것이 차별로 감지하도록 하는 것은 논리보다는 감수성이다. 특히 차별이 ‘존재’에 바탕한 것이라면 감수성은 더욱 중요하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한 이주노동자라는 존재가 될 수 없다. <곁을 만드는 사람>을 읽으며 이주노동자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만큼 차별에 대한 감수성의 불빛이 좀 더 깜박거림을 느꼈다.

지난 4월 30일 울산, 목포, 거제의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통영의 한 펜션에 모였다. 그 자리에 <곁을 만드는 사람>를 쓴 이은주 동지와 책의 주인공 또뚜야, 김나현 님이 함께해 북토크를 진행했다. 이주노동자가 다수가 조합원인 금속노조 성서공단지역지회 김희정 지회장도 먼 길을 달려와 함께 했다. 조선소에서 일하며,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이주노동자들과 어떻게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는 하청노동자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명의 이주활동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궁금한 점들을 질문했다.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이해하고 서로가 한 발 더 가까워지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7월에는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동지와 함께 네팔 노동자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곁을 만드는 사람>의 주인공인 또뚜야, 차민다 동지와 함께 미얀마 노동자, 스리랑카 노동자와 만나는 자리도 이어서 마련하려고 한다. 그런 만남을 통해 조선소 이주노동자 중에서도 노동조합 활동가가 생겨나면 좋겠다. 이주노동자가 하청노동조합의 한 주체가 되고,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하청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고 투쟁하는 날을 상상하고 기대한다. 그날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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