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호] 곁을 만드는 사람

[만나고 싶었습니다]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3-05-15 17:37
조회
1345
게시글 썸네일
서로가 서로의 곁이 되는 사회

이장규 산추련회원 (* 4월 14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서평입니다. )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에서 기획한 <곁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6명의 이주민 활동가들이 자신을 비롯한 이주노동자의 삶과 활동에 대해 말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그간 이주노동자의 삶에 대한 르포나 기사 등은 제법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가 직접 말한 내용을 그대로 기록한 책은 내가 알기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필자 중 한 사람으로부터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제목이 왜 '곁을 만드는 사람'일까라는 것이었다. 무슨 소설 제목 같지 않은가.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그 의문은 쉽게 풀렸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며 추상적인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기에 그 곁에 같이 서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런 곁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곁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주민으로 살아가면서 언제 가장 서러웠냐는 질문에 10명 중 9명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프지 않고 열심히 일할 때는 관계가 좋았는데, 아프다고 하자 바로 사장 표정이 변했다는 것. 얼마나 아프냐고 걱정하며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일을 안 하면서 자신에게 닥칠 피해를 먼저 걱정하는 듯한 모습이 가장 서러웠다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수단으로만 대하는 모습을 볼 때 사람은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이전에는 이주민 활동에 별 관심이 없다가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래 가사를 듣고 자신의 삶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주민들이 단지 불쌍하고 도와주어야 할 사람으로만 생각되어서도 안 된다. 이주노동자들을 단지 자신의 돈벌이 수단 내지 한국인들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 즉 일종의 대체노동력으로만 여기는 사장이나 관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에도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한 달에 100만원만 주고 24시간 내내 부려먹자는 법안이 발의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아니라, 나름 스스로는 진보적이라는 사람들도 이주민을 일종의 시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우도 많다. 그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라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다. 사장이나 관료들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그들 또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주인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동등한 주체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반면 책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주민으로서 겪는 어려움들도 많이 이야기되어 있지만, 보다 중요하게 말해지는 것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활동하고 있고 거기서 어떤 긍지 내지 자부심을 느끼는가라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함께 단결해서 해결해 나가는 활동에서 얼마나 삶의 의미를 느끼는지를 주로 이야기하고 그런 과정에서 자신이 존중받고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때 갖게 되는 행복함을 말한다. 자신의 활동을 돌이켜보며, 좋은 사람 내지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어릴 때의 꿈을 이룬 듯한 느낌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단지 도와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사실 선주민, 즉 한국인들도 살아가면서 아프거나 외롭거나 등등의 각종 어려움에 처할 때가 많다. 이주민만이 그런 상황을 겪는 것이 전혀 아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생율이라는 통계 자체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그 자체가 사람을 좌절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을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존중해준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아니 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정말 제대로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곁'이 있으면 사람은 살 수 있다. 곁이 없고 모두가 각자도생만 하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오히려 이 책에 기록된 이주민 활동가들에게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한국 사람 상당수는 이들보다 오히려 더 못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이다. 책 속에도 한국말을 잘 모를 때는 잘못된 것이 있어도 그냥 참고 넘어갔지만, 한국말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까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더라도 주변 상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인간은 단지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소통이 되지 않을 때는 스스로도 일종의 수단으로만 여기게 되지만, 소통의 가능성이 생기면 이를 통해 상황을 개선하려는 문제의식 내지 목적의식이 생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또한 그 언어는 혼자만의 언어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언어라야 한다. 애초에 언어라는 것 자체가 자기 주변의 사람들 및 세계와 서로 소통하기 위한 것이니까.

자신을 표현할 언어를 제대로 가지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돌려주어야 한다. 그들 스스로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사람들이 수단으로서만 여겨지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주민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과 활동을 이야기한 이 책의 출간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아쉬운 점도 있기는 하다. 책에 소개된 6명은 모두 활동가들이다. 이주민 통번역센터 센터장, 영화감독 겸 이주노조 부위원장, 전직 이주노조 지부장이며 현재 네팔노총 활동가, 부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상담활동가, 금속노조 성서공단지회 부지회장, 필리핀 이주노동자 공동체 활동가 등.

아직은 현재의 조건 상 책으로 출간할 수 있는 것은 활동가들의 이야기이겠지만, 앞으로는 활동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이주민들의 목소리도 보다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많은 이주민들이 함께 살고 있다. 우리가 그들 스스로의 목소리를 잘 들으려 하지 않을 뿐, 그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활동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함께 하기 위한 바탕이 아닐까 싶다. 꼭 책이 아니라도 일상 생활 속에서라도 좋다. 이주민을 우리 곁에 함께 서있게끔 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이주민을 특정 사업장이나 가정에만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 사실은 매우 많은 이주민들이 이미 한국에서 살고 있음에도, 상당수 한국인들이 그들을 잘 만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살고 있는 생활환경이 매우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시설이나 집안에만 갇혀있었기에 장애인을 잘 만날 수 없었던 것과 비슷하다.

누군가와 함께 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는 그래서 중요하다. 사업장 이동권이나 장애인 이동권은 단지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더 넓은 세계와 함께 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기에, 이런 이동성과 개방성의 확보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한국은 이미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이며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그들을 나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내 필요를 위한 수단 또는 시혜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동등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들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는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출간된 <곁을 만드는 사람>을 모두가 읽어보시기를 권하는 바이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 이주활동가들의 이야기
권동희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공인노무사 (* 4월 25일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산재 현황을 보더라도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현황을 조금 알 수 있다. 2020년 전체 10만 8379건의 산재가 있었다. 사고 산재는 9만 2383건, 질병 산재는 1만 5996건이다. 사망자 1944명 중 이주노동자는 118명이고, 사고 사망자 788명 중 이주노동자는 94명이었다. 산재보험으로 처리되지 못했던 1990년대 산업연수생 시절보다는 개선된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런 개선이 한국 정부의 선한 의지로 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저임금에 착취당하고 죽어간 많은 이주노동자의 고귀한 생명과 희생에 누군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아니 우리만의 편견에 갇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 책 <곁을 지키는 사람- 만드는>은 단순히 이주노동자를 돕는 이주활동가 6명의 일화가 아니다. 이 책은 이주노동자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서 함께 투쟁하고, 새로운 삶과 공동체를 개척하고 만들어왔던 이주노동운동 역사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다.

그들 대부분은 산업연수생 시절부터 한국 땅에 와서 목숨을 걸고 일해 왔다. 산업연수생에서 미등록노동자, 때론 등록노동자로, 활동가로 일을 해 왔지만 그들이 처음 접했던 노동환경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기피하는 곳이었다. 6명 활동가는 공장에서, 센터에서, 거리에서, 노조에서,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가 노동조합에서, 새로운 공동체에서 쉼 없는 활동과 투쟁을 해왔다. 때론 맞으면서, 때론 임금을 떼이면서, 때론 산재사고에 다치면서, 때론 동료의 죽음을 보면서, 때론 장시간 노동에 쓰러지면서, 때론 구금되고 강제 출국당하면서 말이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유해한 작업환경, 폭력과 욕설, 성희롱이 난무했던 작업공간이 현재라고 얼마나 다를까. 고용허가제로 변경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이주활동가들이 단순히 상담과 노조에 머물러있을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단순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이미 노동조합을 넘어서 문화운동, 협동조합운동, 공동체 운동,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운동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다. 수십 년간 싸워왔던 이주활동가들의 얘기는 잔잔하지만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정주민의 삶과 사고에 갇혀 이주노동자의 삶과 척박한 노동환경에 보다 깊은 관심을 쏟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오늘 우리가 보다 넓은 연대와 정의의 길로 나아가려면 나침반이 무엇인지, 6명 이주활동가의 고되었지만 각성된 삶과 사고를 통해 되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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