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호]책도 좋지만 책보다 더 좋기도 한, 영화
[활동 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8-10-18 16:51
조회
3065

손제희 ‖영화로 세상읽기 이끔이, 경남여성회 부대표
책도 좋지만 책보다 더 좋기도 한, 영화

: 나한테 맞는 좋은 영화를 찾기만 한다면
어떤 영화든지 영화에는 사람 이야기가 있다. 나와 다르거나 비슷한 사람, 희한한 사람, 멋있는 사람, 나쁜 사람 등 영화 제목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감독 김지운)처럼 갖은 인물들이 있으니 그들이 영화에서 벌인 이야기를 보고나면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고 그러면 하고 싶은 말이 생긴다.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즐거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같이 보자는 말을 한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 있을 것이다.
주위에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정작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눌만한 기회가 별로 없었다. 물리적으로나 마음내기 가까운 곳에 영화 모임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하다가 문득, 누군가 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니라 ‘내가 하지 뭐’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16년 봄 경남여성회 영화모임 「영화로 세상읽기」가 시작되었다. 모임 이름 ‘영화로 세상읽기’는 영화를 통해 평소에 무심히 넘기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 사회, 세상의 다양한 면을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좀 다른 관점, 방식을 영상으로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무언가 ‘다르게’를 궁리하고 싶어진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세상과 우리 삶을 견주어 좀 더 살만한 세상을 상상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영화 선정에 공을 많이 들인다. 감독은 어떤 영화들을 만들어 온 사람인지, 현재의 문제나 현상을 다른 각도로 해석하거나 보여주는지, 새로운 관점이나 생각을 불러일으키는지, 소수자와 약자를 배제하지 않고 존중하는지, 사람을 사랑하는 영화인지 등. 내가 가진 정보와 자료를 총동원해서 그 달에 함께 볼만한 좀 더 나은 영화를 선택하려고 시간을 들인다.
영화 상영은 매월 1회이며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올 수 있게 저녁 시간(늦은 7시 30분)으로 정했다. 요일은 매월 넷째주 금요일로 고정되었다. 가끔 참가자들의 제안이나 의논으로 조정이 되기도 한다. SNS에 영화모임소통방이 있어 매월 상영 영화를 공지하고 모임 구성원들이 함께 나누고 싶은 정보나 의견을 올리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열린 굿다운로더 무료상영이어서 정보공유를 희망하면 SNS 영화모임방에 참여할 수 있다.
햇수로 3년, 영화모임을 이어오던 중에 꼽을만한 성과라면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여성영화상영회』(경남여성회, 마창여성노동자회, 이경숙선생추모사업회 공동주최)를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모임이 지역 연대와 기념행사에 몫을 해서 기쁘고 보람 있었다.
영화모임을 하기 전에는 나도 주로 멀티플렉스영화관에서 상영하고 홍보하는 영화들을 봤다. 전국 몇몇 곳에 작은 예술영화전용관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영화 한 편 보겠다고 대구나 부산까지 가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우연히 아는 분과 동행으로 부산 국도예술극장에서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덴마크를 배경으로 한 “더 헌트”라는 영화였는데 그동안 내가 봐 온 영화와 굉장히 달랐다. 그때까지 내가 본 영화가 적어서였겠지만, 그동안 보았던 영화들이 주로 줄거리 전개를 긴박하게 이어가며 배우들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이야기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면 그 날 본 영화는 낯선 소재에다 스토리는 불친절하고 전개가 느리고 느렸다. 영화가 끝나고 계속 다시 생각이 났다. ‘아 그래서 예술영화라고 하는구나, 내가 봐 온 영화와 좀 다른 영화들이 많겠구나’. 또 어떤 다른 영화들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멀티플렉스영화관에서 본 대부분의 영화가 뭔가 아쉬움을 남긴 것과 달리 영화가 나에게 계속 말을 걸고 그런 느낌이 좋았다. 내가 들인 돈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그런 영화가 또 어떤 게 있을까 찾게 되었다. 그런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은 그 영화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내 경험으로 영화는 매우 좋은 문화 매체가 분명하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상영 방식은 극히 자본주의적이고 소비적이다. 티비 드라마는 중학교 2학년 정도의 사고수준에 맞추어 제작되어야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중2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성(시장성)을 갖추려면 표현이나 주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좀 다른 사고, 행동을 보여주는 영화는 영화산업, 배급시장에서 소외된다. 그래서 좋은 영화는 극장에서 보기 어렵다. 영화는 가장 손쉽게 나를 가장 멀리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간접 경험으로, 최고의 문화 매체라 생각한다. 영상으로 이야기를 보는 것은 책읽기와 다른 즐거움이 있다. 몰입해서 책 읽기가 쉽지 않다면 좋은 영화보기를 권한다. 다만, 나에게 맞는 영화를 고르기 위해 시간을 들여야 한다. 여의치 않으면 매월 넷째주 금요일 남산평생교육센터 1층 강당으로 놀러 가듯 오시면 된다.
<영화로 세상읽기 상영작> 라스트 탱고 / 자전거 탄 소년 / 와즈다 / 아무르 / 타인의 취향 /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 캐롤 / 동주 / 리틀 애쉬 :달리가 사랑한 그림 / 트루스 / 무현, 두 도시 이야기 / 다음 침공은 어디? / 나, 다니엘 블레이크 / 히든 피겨스 / 환상의 빛 / 모아나 / 언노운 걸 / 우리의 20세기 / 뗀뽀걸즈 / 빌리진 킹 :세기의 대결 / 우리들 / 릴리 슈슈의 모든 것 / 리틀 포레스트 / 쓰리 빌보드 / 레이디 버드 / 밤쉘
(영화모임문의 jock007@hanmail.net)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선택의 폭이 몇 안 되는 영화들 중에 한편 골라보기, 흥행하는 영화라 왠지 봐야할 거 같은 영화는 종종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극장 나들이는 차려입어야하는 외출 같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보기는 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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