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와 휴업사업장의 증가
김 종 하
어제까지 생산성 향상을 외치던 사업장이 오늘부터는 휴업을 시작한다.
IMF 이후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슬로건이 넘치게 되었다. 그런데 회사가 사는 길은 외자유치를 위한 국가경쟁력 강화이고, 정리해고의 고통분담으로 외자유치를 신속하게 하자고 했다. 결국 중소기업은 몰락했지만 대기업은 급속히 성장했고, 비정규직은 확대되었다. 불안해진 고용시장은 노동강도 강화와 생산의 유연화로 이어졌다.
경제가 회복되고 시장이 확대되자 생산성 향상은 또 다른 과제가 되었다. 생산성 향상을 통하여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안정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논리가 보편화되는 동시에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도, 좋은 시절에도 늘 요구되는 것은 생산성 향상이었고, 그 방안은 노동강도 강화와 생산의 유연화였다.
그런데 지금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공포에 쌓여있다. 거의 1주일 단위로 새로운 지표와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오히려 불안은 증폭되고 있다. 모든 생산설비와 인적자본이 그대로 있으니 생산력에는 문제가 없고, 양산된 비정규직이 임금을 착취당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도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 어려운 시기를 돌파하려면 노동자들이 생산성 향상에 힘쓰고 임금인상도 자제하며, 고통분담을 하지 않으면 완전고용유지가 어렵다고 한다.
왜 이렇게 끊임없이 생산성 향상을 외치며,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내몰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더 어려운 상황이 덮쳐오는 것일까? 어제까지 생산성 향상을 외치던 사업장이 오늘부터는 휴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내일은 또다시 생산성 향상을 외치며 노동자들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 먹을 것이다.
생산성 향상은 더 많이 일하는 것 뿐.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생산현장에서의 생산성 향상방법은 “공수”관리이다. 투입된 인력과 시간에 비하여 생산된 제품이 늘어나면 그것이 곧바로 생산성 향상인 것이다.
그 첫째 방법이 바로 표준 작업시간의 설정이다. 한 개의 제품을 만드는 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더 많은 상품을 더 값싸게 만들어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자본가의 입장에서 ‘될 때 많이 벌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도 이 시기에 ‘될 때 벌자’는 인식이 확산된다. 그래서 모두들 그렇게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건만 미국발 금융위기란 한파 앞에 곧바로 무너져 버린다.
모두들 걱정만 한다. 기업이 무너지면 일자리가 없어지니 어떻게 할 것인가? 기업을 살리자니 또다시 생산성 향상에 힘쓰고 임금인상도 자제해야 할 것 아닌가? 자본은 그렇게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끊임없이 지배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추구해 왔지만 더 쉽고 더 빠르게 더 많은 이윤을 벌기 위해서는 파생상품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했다.
자본의 입장에서야 노동자들의 생산성 향상은 지속되고 있으니,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보고 싶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 노동은 유연생산체계에 빠져들수록 고용안정을 보장 받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믿지 못하면서도 믿어야만 하는 이상한 굴레에 쌓이게 되었다. 노동자 스스로도 장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가공이윤의 혜택을 기다리기도 하였지만 하루 아침에 반값으로 떨어지는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위력을 맞보게 되었다.
실물경제의 보조적 역할에 머물던 금융이 오히려 우위에 서는 금융 자본주의가 경제질서를 변화시켰다. 강도 높은 금융 자유화와 인수·합병 등을 통해 초대형 금융기관에 권력이 집중되고, 이들이 제조업 등 실물경제를 쥐고 흔들게 되었다. 금융이 권력화되면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는 양극화의 부작용을 초래했다. 자금을 끌어들여 손쉽게 돈을 버는 ‘머니게임’이 확산되면서 기업도 본래의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 금융투자자에게 수익을 전달하는 통로로 전락했다.
막상 문제가 터지자 국가권력은 폭력적이고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게 된다. 부유한 투자자는 위험한 투자를 하면서, 위기가 발생하면 공적자금으로 위험 보전을 해주게 되었으니 걱정거리가 없다. 생산과 연구개발에 국가가 주도권을 행사하지만 비용은 사회적으로 부담되고 그 이득은 사기업이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 금융위기를 맞이하자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이 또 다른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정치권력은 이제 그 도구가 되어 기업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이 사회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줄줄이 이어지는 휴업 사업장의 증가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고, 자본과 권력이 제시하는 장밋빛 그림에 속아 밤을 새워 어렵게 번 돈이 물가상승으로 가치하락을 하게 되었으며,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과 대출하여 산 부동산과 주식은 경매와 깡통계좌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어려운 조건에서 휴업이 시작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또다시 생산성 향상에 매달리며 또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건강과 미래를 담보로 굴종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휴업중이거나 휴업을 통보받고 회사와 단체교섭 중이거나 노사협의회를 진행하고 있는 사업장을 살펴보자.
먼저 건설관련 사업장인 볼보건설기계는 굴삭기를 생산하고 있는 업체로서 2008. 10. 23.부터 부분휴업, 전체휴업을 진행하고 있고, 통상임금의 100%를 휴업수당으로 지급받고 있다. 산업용 유압기기와 전동지게차등을 생산하는 두산모트롤은 12. 1.부터 휴업과 교육을 반복하고 있는데, 원청 업체인 볼보건설기계의 휴업과 두산인프라코어의 생산감축에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중장비를 생산하는 한국보그워너CS는 원청업체의 생산감소로 12. 20.부터 10일간 휴업을 하게 되고, 철강 생산업체인 비앤지스틸은 매출감소로 11월부터 순환휴직를 실시하면서 야간근무를 폐지하였다.
다음으로 자동차 산업 사업장인 대림자동차는 판매부진으로 12. 8.부터 휴업을 실시했고, 2009년에도 2월과 3월경에 휴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경남금속은 매출감소로 12월 한달동안 순환휴직을 실시했고, 자동차 제동장치, 조향장치등을 생산하는 센트랄은 GM의 위기에 영향을 받아 유휴인력 협의가 진행중이다. 또한 일진금속과 성산암테코 같은 중소 사업장도 수주량 감소로 부분 휴업이 진행중이다. 물론 완성차를 생산하는 GM대우 창원공장과 쌍용자동차 창원공장도 부분휴업이 진행중이다. 그 외에도 전자부품 생산업체인 대호엠엠아이의 계속되는 부분휴업과 한국산연, 한국웨스트가 휴업이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경기침체의 여파가 지역 사업장들에서 나타나는 경향은 수주물량의 계약취소→매출격감→연장근로시간 축소→생산량축소→부서별 또는 전체휴업으로 이어지고 있어 마침내 정리해고 요구로 나타날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임금이 많이 올랐다며, 귀족노동자라 불려 졌던 많은 노동자들이 사실은 장시간 연장근로에 힘입어 좀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반면 경남도내 노동자 중 4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은 더 큰 고용불안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위기의 확산은 교육비와 주거비, 의료비 지출을 축소할 것을 강요하고 있으며, 정부 정책은 저임금 일자리를 계속 확산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휴업의 확산과 정리해고의 위협, 양극화의 확대 앞에서 이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기전을 준비할 때에는 계획도 빨라야 한다.
어둡고 긴 밤이 찾아 왔다. 위기는 없다고 수없이 외쳐대던 정부가 최근 들어 그동안의 입장을 바꿔 노골적으로 위기를 인정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의 발언을 모아 보면“전례 없는 세기적 위기”, “우리 경제는 성장 및 일자리 창출 능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추세가 이어지면 내년에도 성장과 일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이고, 이에 재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저성장 국가로 전락할 우려마저 있다”(이상 12월16일 과천청사에서 2009년 경제운용방향 브리핑)는 등의 말을 쏟아 내었다. 이명박의 대통령의 발언은 더욱 노골적이다. 그는 “신빈곤층이 세끼밥은 먹고 집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상시국인 만큼 공기업, 금융기관의 고액연봉자의 임금을 깎아서라도 노동자들을 구제하는 발상이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속도감 있는 예산집행과 전국 모든 사업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온 대책들이 유동성공급확대, 금융기관자본확충, 과감한 감세, 재정지출 확대이고, 이를 통해 경기침체를 벗어나고 일자리를 지킨다고 하며, 내년 상반기에 정부 예산의 70%인 173조6천억원을 배정하여 조기집행 한다고 한다. 그리고 30대 국책 선도프로젝트와 광역권 선도사업 예산 56조원(5년간), 지방기업 육성 자금13조원과 이어서 나온 4대강 살리기(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는 약42조원을 투입하는 거대 사업이 있다.
노동 현장에서는 실업과 휴업이 속출하고 있고, 정리해고가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 예산은 폭탄처럼 쏟아질 준비를 하고 있다. 어느 모로 보아도 선택과 집중을 통한 속도감 있는 예산집행과 전국 모든 사업의 신속하고 효과적인 집행이 노동자들의 권리신장과 고용안정으로 이어질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자본과 정권은 현 위기를 수익성 확보를 통하여 극복하고자 하며, 그 고통 분담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정치권력은 이제 자본의 도구가 되어 기업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은행을 소유하는 기업, 병원을 소유하는 기업, 문화를 소유하는 기업으로 확대시켜 나갈 것이고, 이 사회에 대한 규제는 결국 노동탄압을 통한 착취구조의 고착화로 나갈 것이다.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더 많은 안정적인 일자리가 사라져야 할 것이며, 작은 기업들은 큰 기업에 더 많이 흡수될 것이다. 수익성 확보를 위해 작은 것이 큰 것에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작금의 대중적 가치는 사회적 위험 비용의 사회적 부담과 그에 이어 사회적 통제를 이루어 내는 것에 있음을 다시 한번 더 절절히 느끼게 해주는 현실이다. 이렇게 국민의 세금이 퍼부어 지는 시기를 그냥 보내고 만다면 다음 시기에 어떤 권리가 주어질까? 장기전을 준비할 때에는 계획도 빨라야 한다. 너무 길게 오랫동안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편집자주 : 이글은 휴업이 시작되던 12월에 쓰여진 글로 지금과는 상황이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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