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김춘택 (금속노조 경남지부)
2016년 1월부터 적용될 최저임금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아마 이 글을 읽을 때쯤엔 이미 2016년 최저임금이 결정된 이후일 것이다. 그런데 2016년 최저임금이 얼마로 결정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들을 살펴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그 쟁점들 속에서 향후 최저임금 투쟁의 방향에 대해 전망과 함의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6년 최저임금 결정을 둘러싼 풍경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최저임금위원회를 해체하라
비정규직 확대와 함께 최저임금이 곧 자신의 임금이 되는 노동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국민임투’라는 말이 상징하듯, 그에 따라 최저임금 투쟁의 중요성도 커졌다.
한편, 매년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는 최저임금 투쟁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몇 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최저임금 결정시기가 되면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며칠 밤을 지새우며 농성투쟁을 하는 것으로는 현실의 벽을 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존의 최저임금 투쟁의 한계는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제도 자체로부터 비롯한다.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고 노동부 장관이 그것을 고시하는데,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다.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 사이에 의견이 다를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결국 실질적인 결정권한은 공익위원이 갖게 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노동자위원이 처음에 어떤 안을 제출하는가와 상관없이 결국에는 현행 최저임금에서 몇 백 원 더 인상되느냐만 남게 되고, 막판에는 공익위원의 낙점(?)을 받을 정도의 현실적인 조정안을 가지고 힘겨루기를 하거나 공익위원이 사용자 편을 들 것 같으면 아예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거나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결국 이 같은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최저임금 투쟁은 공익위원의 손바닥 안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최저임금위원회 해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 문제의식에 대한 동의는 있어도 아직까지 최저임금위원회를 해체하기 위한 뚜렷한 내용과 방법은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올해는 기존의 최저임금위원회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다. 그 시도들의 결과와 그에 대한 평가가 최저임금 투쟁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민주노총은 몇 년 전부터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최저임금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 요구가 현실에서 갖는 의미나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더구나 최저임금위원회 결정구조 탓에 얼마 안가 유명무실해지고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요구로 그쳤다.
이같이 매년 형식적으로 제기되는 요구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으로, 작년에는 공단 미조직노동자 임금실태조사와 임금인상 요구를 바탕으로 ‘시급 2,000원 인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징검다리 삼아 올해는 민주노총에서 일찌감치 ‘최저임금 1만원’ 요구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위원의 요구로 제출됐다.
현재 최저임금의 거의 두 배 가까운 금액이라는 점에서 ‘뜬구름 잡는 요구’ 또는 ‘비현실적 요구’라는 반론도 있다. 노동조합 간부들은 “우리 조합원들의 시급도 1만원이 안 되는데 무슨……”이라며 뜨악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 1만원’은 최저임금을 현재보다 몇 백 원 더 올릴 것인가가 아니라 최저임금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그만큼의 금액이 되어야 하는지를 질문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요구다. 최저임금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임금이라면 지금보다 몇 백 원 더 오를 것인가가 아니라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선 얼마의 임금이 필요한가가 질문되어야 한다.
‘최저임금 1만원’은 최저임금 문제를 이슈화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고, 최저임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최저임금 1만원’은 매년 형식적으로 요구됐다가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요구가 아니라 올해 최저임금이 결정되더라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을 수 있는 요구다.
현실에 있어서도 ‘최저임금 1만원’ 요구는 올해 최저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그 내용이 더욱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채워야 하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다. 그럴수록 ‘최저임금 1만원’은 현실에 한발 더 가까워지는 요구가 될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의 변화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9명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서 각각 추천해 구성된다. 이제까지는 대부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주요 임원들이 맡아왔는데 올해는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
민주노총에서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을, 한국노총에서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을 추천해 최저임금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두 명 모두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의 소속은 아니지만, 최저임금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비정규직과 청년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추천된 것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주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되었기에,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좀 더 충분히 대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이러한 노동자위원 구성의 변화는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비정규직과 청년노동자의 문제를 여론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최저임금 결정에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앞으로도 더욱 필요한 부분이다.
최저임금위원회 회의내용 공개
최저임금 심의는 초반부터 ‘회의 내용 공개’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심의 내용을 노동자들이 알 수 있도록 공개하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사용자위원들은 의장만 전원회의 동의를 얻어 회의결과를 대외적으로 발표할 수 있고, 위원은 회의결과를 위원회의 동의 없이 발표할 수 없도록 정한 운영규칙을 근거로 공개를 반대했다.
이에 노동자위원들이 언론 기고 등을 통해 내용 공개의 정당성을 이야기하고 심의내용을 간접적으로 공개하자 사용자위원들이 반발하면서 쟁점이 되었다.
최저임금의 결정에 노동자위원 9명이 미칠 수 있는 힘은 크지 않다.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라도 심의내용은 공개되어야 한다.
심의내용 공개를 둘러싼 올해의 투쟁이 내용 공개를 가로막고 있는 최저임금위원회 제도 자체를 고치기 위한 투쟁으로 앞으로 더욱 확대될 수 있어야 하겠다.
최저임금 산정기준 변화
내용에 있어서는 최저임금 산정기준 변화 요구가 쟁점이 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988년 최저임금법이 시행된 이래 ‘미혼 단신 노동자 생계비’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산정해 왔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가구 생계비’도 조사해 최저임금 산정기준으로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최저임금을 가족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단신 생계비뿐 아니라 2~4인 가구 생계비도 조사해 최저임금 결정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단신 노동자 생계비(155만 3천390원) 대비 최저임금(108만 8천890원)은 70%다. 그러나 2인 가구(274만 4천183원) 생계비 대비 39%, 3인 가구(336만 3천173원)는 32%, 4인 이상 가구(401만 2천777원)는 27% 수준에 불과하다. 즉 가구 생계비를 반영하면 현재의 최저임금이 최소한의 생계유지에도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또한 올해는 공익위원들이 노동자위원 주장에 동조하면서 최저임금 분배지표에 중위값뿐 아니라 임금평균 대비 최저임금 수준도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노동계는 2014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이 5인 이상 사업장 정액급여의 41.1%, 임금총액의 32.7%에 그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는 1인 이상 사업장 시간당 임금총액 중위값의 50.9%, 통상임금 중위값의 48.5%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5인 이상 사업장이냐 1인 이상 사업장이냐에 따라, 임금평균을 사용하느냐 중위값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현재 최저임금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 단위 시급, 월급 함께 발표
최저임금 심의 막바지에는 최저임금 결정 단위를 현행대로 시급만 발표할지, 월급도 함께 발표할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이 시급 1만원으로 결정되면 주 40시간 기준 월소정근로시간인 209시간을 곱한 월급 209만원을 함께 발표하자는 것이다.
월급 209만원에는 주휴수당이 포함된 금액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주휴수당 지급 여부를 노동자가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또 소정근로시간을 줄여서 임금 수준을 낮추는 사용자의 편법도 막을 수 있다.
반면 사용자위원은 월급을 함께 발표하면 마치 소정근로시간이 짧은 노동자도 모두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혼란을 초래한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공익위원이 최저임금 월급 발표에 찬성하자 회의장을 박차고 퇴장하기도 했다.
업종별 최저임금
한편 사용자위원은 최저임금을 전국적으로 단일하게 결정하지 말고 업종별로 따로 결정하자고 요구했다. 현행 최저임금법에는 최저임금을 사업종류별로 적용할 수 있게 돼 있으나 지금까지는 전국적으로 단일한 최저임금을 결정해 고시해 왔다.
노동자위원은 당연히 강력하게 반대했다. 최저임금을 사업종류별로 적용할 경우 최저임금이 하향 평준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최저임금이 업종별로 정해지면 최저임금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것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도 더 어려워진다.
최저임금 1만원, 즐거운 상상
이처럼 올해는 ‘최저임금 1만원’ 요구를 통해 단지 얼마를 올릴 것인가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 물음을 던졌다. 더불어 최저임금 산정기준, 결정 단위, 적용방식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틀에 박힌 최저임금위원회 구조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고자 하는 시도다. 하지만 이 역시 공익위원이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근본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뚜렷한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최저임금 1만원’ 요구는 보다 그 내용이 충실하게 채워져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위원회 안에서의 새로운 시도들 역시 올해의 결과를 바탕으로 더욱 전면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최저임금을 자신의 임금으로 적용받는 공단의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함께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공단의 미조직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1만원’ 요구를 들고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함께 공단을 행진하는 날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 통계수치 등은 <매일노동뉴스>(www.labortoday.co.kr) 기사에서 옮겨 적은 부분이 있음을 알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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