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비정규노동자의 건강권 현실

[초점]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7-03-24 15:49
조회
2827
게시글 썸네일
이진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부장)
한국은 여전히 OECD 산재 사망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재벌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무분별한 외주화로 간접고용이 확대되고 있다.
산재의 80%는 기업의 부담능력이 없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인식되어 왔지만, 실제는 그 반대였다. 2015년 주요 30개 기업의 하청 노동자 사망 비율은 95%에 달했다.
사실상 재벌 대기업이 원청인 하청 산재가 대다수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2016년 초 인천, 부천에서 발생한 메탄올 중독사고는 우리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삼성, LG 하청에서 불법파견고용으로 일하던 20대 노동자들 5명이 실명위기에 뇌손상까지 놓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부의 임시건강진단에서 누락된 파견노동자 2명의 메탄올 중독이 다시 밝혀졌다. 파견, 용역, 하청의 이름으로 확대되는 '위험의 외주화'는 청년 노동자의 미래를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2014년 8명의 하청노동자 사망이 이어졌던 현대중공업에서는 2016년 11명의 산재사망이 이어졌고, 이중 8명이 하청 노동자였다. 지난 5년간 현대중공업의 산재사망 중 74%가 하청 노동자이고, 현대중공업뿐만이 아니라 2012년부터 최근까지 조선업 3사(현대, 대우, 삼성)에서 발생한 산재사망 중 하청 노동자의 비율은 78%에 달한다.
조선업의 위험의 외주화 확대가 하청 노동자의 사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분별한 외주화에 의한 문제는 공공부문도 마찬가지다. 지난 5년간 발전공기업 5개사(남동, 남부, 동서, 서부, 중부발전)에서 산재사고 중 96.6%는 하청 노동자였고, 사망자 21명은 전원 하청노동자였다. 특히, 사고가 가장 많은 남부발전의 경우에는 사고 피해자 전원이 하청 노동자 일뿐 아니라, 이중 90%는 재하도급에서 발생했다.

한전의 하청노동자 산재발생은 원청 정규직의 39배로, 지난 5년간 총 710명이 한전 협력사에서 일하다 사망했다. 22,900V 전기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하는 활선공법을 비롯해서 전기원 노동자의 추락, 감전, 각종 직업성 암 등이 심각한 상태다. 동일한 작업을 하는 원청 정규직은 1인당 연간 73만원 상당의 안전장구를 지급하고 있으나, 평균 하청 노동자 3~4명이 팀 작업을 하는 1건 공사 당 책정된 안전관리비는 17,000원이었다.

2016년 5월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청년노동자가 달리던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그의 공구가방에는 뜯지 못한 컵라면과 국물이라도 떠먹으려 했던 숟가락이 기름 때 묻은 공구들과 뒤섞여 있었다.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으로 무분별하게 외주화 된 승강장 스크린도어 정비는, 위험한 순간 지하철 기관사에게 알리려면 9단계를 거쳐야 하는 위험의 외주화를 만들었다. “1시간 이내에 수리 정비하지 못할 경우 패널티를 부여”하는 상황에서 애초 2인1조는 불가능했다.

2016년 9월, 선로보수 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2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열차가 지나갈 시간이 이미 지난 심야에 지진으로 인해 지연 운행 중인 경주-김천KTX에 치인 것이다. 이들은 하청노동자이기 때문에 운행이 있다는 연락을 받지 못 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들 노동자가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선로 위 손수레를 치우다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뒤 늦게 밝혀졌다.
이러한 죽음도 처음은 아니다. 2011년 인천공항철도 선로보수 5명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는 <심야 열차 진입정보>가 제공되지 않아 발생한 참사였다. 코레일의 최근 5년간 발생한 중대재해 중 76%는 하청 노동자에게 벌어졌다. 1천명 가까이 탑승하는 KTX에 안전담당 승무원은 단 1명뿐이다. 여승무원을 외주화 하기 위해 이들에게는 안전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울산에서 진도 5.0 규모의 지진이 났을 때도, 9월 경주 지진이 났을 때도 하청 비정규 노동자는 지진경보 알림 대상에서도 제외되었다.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 확인된 한국에서 원전에 대한 불안은 증폭되고 있지만, 원전의 방사선 관리, 용수처리, 정비 등 운영인력의 37%가 하청 노동자이다. 최근 5년간 원전사고 81건 중 71건이 하청 노동자에게 발생했고, 사망사고 6명은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하청 노동자의 방사선 피폭은 일반인의 14배, 정규직의 10배에 달하는 현실에서 원전의 안전을 최전선에서 지켜야 할 노동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면 원전 자체의 안전과 주변 시민들의 안전도 위협받는 것이 아닌가?

위험업무 외주화로 노동자는 죽고 시민안전도 불안해지고 있다. 재벌 대기업이 간접고용을 선도하면서, 하청 산재사망은 증가하고, 시민의 안전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재벌들은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예방책임, 도급금지와 원청책임강화와 관련한 사고 처벌도 빠져나가고 있다. 심지어, 산재보험료 할인까지 수백억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임시 국회에서 결국 도급금지와 원청책임강화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통과가 좌절되었다. 하지만, 위험의 외주화 금지는 하청 노동자뿐 아니라 사업장 전체 노동자의 생명안전과 시민안전을 지키는 길이다.
위험한 업무, 생명안전 업무의 기간, 파견 고용 및 하도급을 금지하고, 도급이 진행되는 사업장에서는 원청 책임을 강화해야 하며, 근본적으로는 상시업무의 직접 정규직 고용이 법제화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투쟁을 다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전체 421
번호 썸네일 제목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여는 생각] [132호]피 흘리는 현실 앞에, 치료마저 외면당한 노동자들
mklabor | 2025.06.02 | 추천 0 | 조회 813
2025.06.02 0 813
31
[상담실] [132호]업무상 사고와 질병의 구분 방법
mklabor | 2025.06.02 | 추천 0 | 조회 119
2025.06.02 0 119
30
[상담실] [131호]산재 요양 중에도 상여금 받을 수 있을까?
mklabor | 2025.02.06 | 추천 0 | 조회 698
2025.02.06 0 698
29
[상담실] [130호]휴업급여 지급 요건의 비현실성
mklabor | 2024.10.15 | 추천 0 | 조회 659
2024.10.15 0 659
28
[상담실] [129호]출퇴근재해로 산재 신청하기
mklabor | 2024.07.05 | 추천 0 | 조회 1309
2024.07.05 0 1309
27
[상담실] [128호]‘소음성 난청’도 산재가 되나요?
mklabor | 2024.04.11 | 추천 0 | 조회 1966
2024.04.11 0 1966
26
[상담실] [127호]물량팀은 산재 승인 어떻게 받나요?
mklabor | 2024.01.18 | 추천 0 | 조회 1804
2024.01.18 0 1804
25
[상담실] [126호]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mklabor | 2023.10.21 | 추천 0 | 조회 1856
2023.10.21 0 1856
24
[상담실] [125호]스스로 만든 지침도 안 지키는 근로복지공단?
mklabor | 2023.07.21 | 추천 0 | 조회 2215
2023.07.21 0 2215
23
[상담실] [124호]의사 선생님 잘 좀 봐주세요
mklabor | 2023.05.15 | 추천 0 | 조회 2416
2023.05.15 0 2416
22
[상담실] [123호]같은 사례, 다른 결론
mklabor | 2023.03.09 | 추천 0 | 조회 2505
2023.03.09 0 2505
21
[상담실] [122호]산재노동자가 짊어져야 하는 입증책임의 무게
mklabor | 2022.11.04 | 추천 0 | 조회 2903
2022.11.04 0 2903
20
[상담실] [120호]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면 회사에 불이익이 가나요?
mklabor | 2022.04.21 | 추천 0 | 조회 2657
2022.04.21 0 2657
19
[상담실] [119호] 산재 노동자와 실업급여
mklabor | 2022.01.22 | 추천 0 | 조회 2832
2022.01.22 0 2832
18
[상담실] [118호]최근 눈에 띄는 불승인 사유
mklabor | 2021.10.11 | 추천 0 | 조회 3007
2021.10.11 0 3007
17
[상담실] [117호]산재 신청을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의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
mklabor | 2021.07.08 | 추천 0 | 조회 3519
2021.07.08 0 3519
16
[상담실] [116호]산재 신청에도 빈부격차가 있다.
mklabor | 2021.04.02 | 추천 0 | 조회 3664
2021.04.02 0 3664
15
[상담실] [114호]나이 먹었다고 짤렸어요!
mklabor | 2020.08.27 | 추천 0 | 조회 3801
2020.08.27 0 3801
14
[상담실] [113호]“산재 불승인 됐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mklabor | 2020.05.22 | 추천 0 | 조회 4038
2020.05.22 0 4038
13
[상담실] [112호] “직영은 들어오면 안 됩니다”
mklabor | 2020.02.28 | 추천 0 | 조회 3629
2020.02.28 0 3629
12
[상담실] [111호]하청노동자가 또 죽임을 당했습니다.
mklabor | 2019.12.06 | 추천 0 | 조회 3488
2019.12.06 0 3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