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호]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 6개월, 실효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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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0-02-28 17:31
조회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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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옥  // 금속법률원 노무사


 

2020년 1월 새해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 6개월을 맞이했다. 노동자들은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으로 괴롭힘이 사전에 예방되는 한편 그동안 현장에서 은밀하게 발생하거나 숨겨져 있던 괴롭힘을 신고하면 정의와 형평의 원리에 따라 피해 회복 조치가 이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입법 과정과 시행 초기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법의 실효성 문제가 실제 현장의 법 적용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 지역에서는 지난 2019.7.16.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 첫날, 김해 지역의 한 노동조합이 노동청에 사내 괴롭힘을 진정하고 조사 요청을 했다. 대흥알엔티회사는 직원들에게 업무능률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근로시간 중 화장실 이용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관리자들은 화장실 이용 시 문서 기입 또는 메신저 등으로 보고하게 했고, 심지어 여자 화장실 앞에서 남성 관리자가 노동자들의 입출입을 지켜보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지극히 사적인 행위인 생리적 욕구를 타인에게 강제적으로 공개하면서 정신적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여성 조합원들은 화장실 앞 남성 관리자의 감시에 성적수치심까지 느끼며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 육체적 고통까지 호소했다.

노동청은 상식을 넘어서는 규정을 만든 대흥알엔티회사에 직장내괴롭힘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라고 권고했다. 누가보아도 괴롭힘 행위자인 대흥알엔티회사에, 그 가해 여부를 판단하라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상대로 대흥알엔티회사는 자체 조사결과 직장내괴롭힘은 없다고 결론내렸다. 노동조합이 이의제기 했지만 노동청은 회사를 제재할 규정이 없다며 대흥알엔티회사에 후속조치로 괴롭힘 예방대책을 주문했을 뿐, 관련 내용을 재조사하거나 조사 과정의 문제점 등 별도의 사후 점검도 진행되지 않았다.

대흥알엔티회사의 화장실 금지 규정은 회사 지침으로 일방적으로 시행된 조직적 괴롭힘이다. 불합리한 규정을 만든 사업주가 괴롭힘의 주체이며, 관리자들은 상명하복식 위계질서에 따라 각 조직과 부서 단위에서 노동자 개인을 압박하고 통제하며 괴롭힘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켰다.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이나 실수, 잘못이 아니라 회사 내에서 가장 큰 권력을 지닌 사업주가 괴롭힘 가해자인데, 누가 그를 상대로 조사할 수 있을까. 노동부 지침에서도 사업주가 괴롭힘 행위자로 지목된 경우, 이사회 등에서 별도 절차에 따른 판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노동청에 직접 신고할 경우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사내 해결 원칙이 여전히 우선 적용되면서, 피해자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 다행히 대흥알엔티회사의 경우 사건 초기 노동조합이 괴롭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더 심각한 인권침해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은 지난 연말 한국화이바제조업체에서 발생했다. 직장내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지역의 30대 초반 노동자가 1년 넘게 지속된 상사의 과도한 요구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은 사망 직후 노동청에 직장내괴롭힘 사실을 알렸다. 노동청은 사안이 긴급하고 중요함에도 기본 조사 기간을 넘긴 40여일이 지난 1월 21일 청년 노동자가 상사의 지속적인 카풀 요청으로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점 등을 볼 때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한국화이바회사에 괴롭힘 여부 재조사 실시, 행위자에 대한 징계 조치 등의 사항을 권고했다. 그런데 한국화이바회사는 피해자가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서 가해자로 지목된 행위자가 오히려 업무를 도와주고 있어다며 가해자를 두둔하며 괴롭힘 조사를 해태하고 있다. 한국화이바회사의 반응은 직장갑질이 만연한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피해 사실을 말하면 피해자를 조직 부적응자나 업무 능력 부족으로 밀어붙이고 가해자는 악의가 없었다고 변명한다. 능력이나 충성도, 친화력 등 개인적 특성은 개인 간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괴롭힘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부여해서도 안 되다. 더욱이 가해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 행위가 업무상 범위를 넘어서서 근로환경을 악화시키거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줬다면 직장 내 괴롭힘이다.

만약 한국화이바회사가 노동부의 지침에 따라 취업규칙에서 직장내괴롭힘 예방 교육을 명시하고 실시했다면 청년 노동자는 사내 괴롭힘 신고 보호 절차 규정을 알거나 적어도 노동청의 신고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는 가해자가 아니라는 직장상사가 자신의 행위가 괴롭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쩌면 그 청년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다. 노동청이 한국화이바회사의 괴롭힘 조사, 가해자 조치 여부를 넘어서 향후 예방까지 적극 행정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한국화이바회사의 직장내괴롭힘은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고, 그 결과가 직장내괴롭힘 규정의 실효성을 확인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대흥알엔티와 한국화이바의 사례를 보면서, 직장내성희롱 예방, 피해자 보호, 가해자 조치의무와 직장내괴롭힘 규정들이 비교된다. 남녀고용평등법에 규정된 직장내성희롱 금지법 규정들은 사업주의 성희롱 행위, 예방교육 및 피해자 보호, 가해자 조치의무 미이행 시, 조사 내용 누설 금지 위반 등에 과태료 처분이 부과된다. 성희롱 여부의 입증책임도 사업주가 부담하며,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과 개인 모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동인권 감수성이 부족하고 권력자 중심의 문화, 인식, 구조를 유지하며, 괴롭힘 피해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해자와 계속된 업무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용기있게 피해 사실을 밝히기 어렵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실효적으로 적용되어 노동인격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벌칙규정, 강제성이 필요하다. 특히, 근로계약 순간부터 회사는 노동자의 안전을 배려할 의무를 지고 있기에, 괴롭힘을 예방할 필요성은 당연하다.

직장내괴롭힘 금지 운동의 대표적 단체인 직장갑질119에서도 법 시행 후 상담내용을 분석 한 후 법의 실효적 적용을 위해서 가해자가 사용자인 경우 및 조치의무 미이행시 과태료 처분, 예방교육 의무화, 입증책임 사용자 부과, 가해자 손해배상 청구, 4인 이하 사업장 및 하청, 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도 적용 등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실제 현장에서 법을 집행하는 근로감독관을 신뢰할 수 있는 노동부 개혁을 요청했다.

2020년 새 시대가 열릴 것 같은 올해에도 우리는 늘 그렇듯이 직장으로 출근하고 다른 이들과 관계 맺으면서 노동하고 퇴근한다.
이 일상은 평화롭고 안전해야 하는데, 괴롭힘은 노동자들의 공동이익인 안전한 일터를 해치는 위험요소이다.
노동자가 위험을 피하는 일이 좋은 직장에 속하는 우연한 행운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서 보장한 당연한 권리인 건강한 작업환경을 직장내괴롭힘 금지 법률을 통해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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