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호]창원 거제지역 노동열사와 활동가 희생자 추모모임을 만나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0-05-22 18:13
조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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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지회 문철웅 문체부장,  문재혁 비정규대외협력 2부장
림종호 이영일열사 추모사업회 지은구 회장
배달호열사 추모사업회 양준호 회장
이경숙선생 추모사업회  최영민 회장
홍여표활동가 추모모임 준비위 윤종현


산추련은 2020년 4월 27일 지역의 노동열사와 활동가 추모모임 활동가들을 모시고
창원거제지역 노동열사에 대한 소개 및 추모 활동 등을 듣는 간담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날 간담회를 통해 우리지역 노동 열사의 삶을 기억하고
열사와 활동가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 되새기고자 하였습니다.

이 번 호에서는 창원거제지역에서 활동하였던 노동열사와 활동가, 그의 삶을 소개하고
다음 호에서는 각각의 추모활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새로운 세대에게 열사와 활동가들이 기억되었으면 하는지 관한 내용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노동열사


두산중공업 지회 배달호 열사

배달호 열사는 1953년 10월 14일 경남 김해에서 출생하여 1981년 1월 22일 두산중공업에 입사하였습니다. 1997부터 대의원 및 교섭위원으로 열심히 활동하면서 파업투쟁(4.7파업투쟁)으로 2002년 7월 23일 구속되어 9월 18일 보석으로 출소하였습니다. 사측은 열사의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 하였고, 임·단투 참가를 문제 삼아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하였습니다. 열사는 출소 후 현장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해고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했고, 위와 같은 사측의 부당한 대우와 손배가압류에 저항하며 2003년 1월 9일 분신투신 하였습니다.

유서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다. 해고자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뭉클해지고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말살, 악랄한 정책으로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사원의 고통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중략…더러운 세상 악랄한 두산 내가 먼저 평온한 하늘나라에서 지켜볼 것이다.

열사의 희생으로 사측의 손배가압류는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열사 사망 후 두산자본은 이미지 관리를 위해 17년 간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으나 2020년 현재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우조선 지회
이석규 열사, 박진석 열사, 이상모 열사, 박삼훈 열사
- 이석규 열사

이석규 열사는 1966년 11월 29일 전북 남원에서 출생하여 1983년 8월 대우조선 조립2부에 입사하였습니다. 열사가 대우조선에 재직하던 시기는 6월 항쟁을 비롯한 민주화의 열기가 뜨겁던 시절이었습니다. 열사는 월 30만 원의 임금을 지불하고 월 560-580시간의 노동을 강요하는 사측의 불합리한 경영 방침에 항거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이에 1987년 초 노동 조합을 결성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사측의 방해로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열사를 비롯한 대우 조선 노동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1987. 8. 11. 설립인가를 받아 노동조합을 결성하였습니다.

열사는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활동하였고, 1987. 8. 22. 김우중 회장과 면담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날 사측은 ‘오리걸음을 하면 김우중 회장과 면담을 시켜주겠다.’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여성들도 참여했고, 폭력경찰이 옷을 벗기는 만행도 저질렀습니다. 사측의 무리한 요구에도 면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오리걸음을 걷는 중에 열사는 경찰이 쏜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아 사망하였습니다. 장지인 광주 망월동 묘역으로 가는 중 숨어 있던 경찰에 의해 열사의 시신은 탈취되어 남원으로 변경되기도 하였습니다.

열사의 죽음은 민주노조에 대한 경찰의 폭력진압 등 김영삼 정권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 박진석 열사

박진석 열사는 1969년 3월 26일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여 1984년 인천 직업훈련원을 수료하고 대우조선 공무기계부에 입사하였습니다.
당시 노태우정권과 대우자본은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회사 구사대에 강제로 가입시켜 노노갈등을 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사측이 상록회에 가입할 것을 강요하자, 열사는 1989년 5월 29일 노조 사무실에서 ‘회사는 더 이상 노동자를 분열시키지 말라, 노동조합 만세’를 외치며 분신 투신하였습니다.
열사는 분신 직후 부산 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989년 6월 4일 사망하였습니다.
- 이상모 열사

열사는 1969년 10월 21일 전남 보성에서 출생하여 1986년 광주 직업훈련원을 수료한 후 대우조선 조립2부 선수미과에 입사하였습니다. 사측은 박진석 열사가 분신투신하자 ‘일부 선동분자들은 단체협약과 사규를 무시하고…몰지각한 행동을 자행했다. 이러한 행동에 동조하는 것은 회사문을 빨리 닫게 하는 불행한 결과를 자초하게 된다’라는 내용을 담은 담화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열사는 사측의 위와 같은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분개하여 유서를 남기고 1989. 5. 29. 분신투신 하였습니다.

유서

경영자란 놈이 생각하는 것이 노동자 탄압과 자신의 명분을 위하여 살아 간다면 노동자는 이 땅의 노예밖에 더 되겠습니까? 부모님 불초소생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못난 불초소생은 먼저 이 세상을 하직하오니 부디 제 생각 마시고 독한 마음 잡수시고 저의 못다한 세상살이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 박삼훈 열사

열사는 1955년 경북 영덕에서 출생하여 1982년 대우조선 특수선 생산1부에 입사하였습니다.
1995년 5월 26일 8천여명이 참여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파업에 사측의 방해로 천여명밖에 참석을 못하자 당시 노조 위원장이었던 열사는 사측의 만행에 분노하며 단식 농성을 시작 하였고,  1995년 6월 21일 특수선 본관 사무실 옥상에서 분신 투신하였습니다. 열사의 죽음은 대우조선의 현장 노동통제, 개인 사생활 감시라는 비인간적 행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서

이놈의 가진 자만이 판치는 세상 우리 근로자는 작은 월급으로 치솟는 물가를 따라 가지도 못하고 노동자여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도 인간답게 살려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툭하면 집회 참석 못하게 하고 우리 권리를 우리가 찾아야지 누가 찾습니까?
노동자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올 임금 100% 쟁취하기 바랍니다. 사용자여 각성하라 앞서간 노동동지 뒤를 따라갑니다. 노동형제 여러분 기필코 승리하기 바랍니다.
- 최대림 열사

열사는 1957년 12월 10일 경남고성에서 출생하여 1985년 1월 23일 대우조선 수리선 생산부에 입사하였습니다. 사측은 IMF를 빌미로 1997년 말 성과금 및 상여금을 늦게 지불하였으며, 연차수당을 체불하였습니다. 또한 토요 격주 휴무를 중단하고 조기 작업을 한 시간 더 하여 업무량이 과중되었고 열사가 지게차 운전도중 안전사고를 냈다는 이유로 보직을 박탈하고 타부서로 보내는 등 부당한 조치를 하였습니다.
이에 열사는 근로자 파견법 입법화 반대 및 노동조합 행동지침을 따르자는 유서를 남기고 1998년 2월 13일 분신 투신하였습니다.

유서

조합원 여러분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에 동참합시다. 전국 수백만 근로자가 하나되어 민주노총의 지침을 따를 때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은 저지됩니다. 여러분 이번 노사정 위원회가 합의한 내용 중에는 기업의 양도인수합병까지 포함하여 정리해고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법이 통과되면 큰일입니다. 이 땅에 정직한 기업인은 얼마 없습니다. 악용하여 얼마나 괴롭힐지 상상해 보십시오.
S&T중공업 지회 이영일 열사, 림종호 열사

S&T중공업지회는 이영일, 림종호 열사를 합동으로 기리는 추모비를 솥발산에 세웠다. 이열일, 림종호 열사가 산화한 지 19년, 15년 만에 세워진 추모비다.
- 이영일 열사

열사는 1962년 9월 25일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났습니다. 1989년 4월 3일 주식회사통일 차축부품부 추진축 반에 입사하였습니다. 열사는 1990년 2월 대의원과 노사통계부 차장을 겸직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던 중 당시 노조위원장이 인사차 회사 본관에 올라갔다가 매복해있던 사복경찰에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조합원들의 항의과정에서 파업이 일어났고, 핵심 간부들이 구속되거나 수배 당하였습니다. 사측은 노조원들에 대해 당시 46억 원의 손배 가압류를 하는 등 악랄한 수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열사는 위와 같은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여 1990년 5월 3일 식당 옥상에서 분신 투신하였습니다.
- 림종호 열사

열사는 1964년 12월 14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났습니다. 1982년 10월 당시 동양기계 실습생으로 입사하였습니다. 1992년 총액임금제분쇄를 위한 굴뚝 투쟁으로 2차 구속되었고, 재판과정에서 살이 빠져 수갑이 헐거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열사는 재판정에서 수갑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며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재판부는 이에 추가형을 선고하였습니다. 1994년 9월 18월 진주교도소 수감 중 독방에서 목을 매어 의문사 하였습니다.

옥중에서  남긴 편지 글 대로
투쟁에 대해서는 여름날처럼 뜨겁고,
개인주의에 대해서는 가을바람이 낙엽 쓸어버리듯 하고,
적에 대해서는 엄동설한처럼 냉혹해야…
열사는 선봉에서 목숨을 걸고 투쟁한 불굴의 투사였습니다.
대우중공업 정경식 열사

열사는 1959년 12월 15일 태어나셨습니다. 1984년 대우중공업 창원공장에 입사하여 1987년 2월경 회사의 임금동결에 항의하는 중식거부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5월경 노조 대의원 선거 및 지부장선거에서 민주파 대의원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하는 등 민주노조 건설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1987년 5월 노조지부장 선거와 관련하여 지지후보가 달랐던 반대파 조합원 이 모씨와의 상해사건에 연루되어 고소를 당해 경찰서 출두요구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6월 8일 외출 후 행방불명되었고, 1988년 3월 2일 창원공장 인근 불모산 기슭에서 유골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창원경찰서와 마산지검은 이 모씨와의 폭력사건 합의가 어려워지자 구속을 두려워한 나머지 실종 당일인 1987년 6월 8일 변사현장에서 목을 매어 비관, 자살한 것으로 수사종결하였습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실종에서부터 변사사건 내사종결까지 국가기관의 조직적 개입에 의해 조작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10년 8월 23일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3년만에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대우자동차 이상관 열사

열사는 1972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습니다. 1994년 창원 대우중공업 국민차 사업부에 입사하여 일을 하던 1999년 2월 20일 산재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근로복지 공단은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열사를 통원조치 시키는가 하면 강제 퇴원 조치를 했습니다. 열사는 힘겹게 통원 치료를 받던 중, ‘예전의 저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몸이 아프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울 것인 줄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라며 육체적 고통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유서로 전하고 1999년 6월 22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1999년 7월 7일, 산재추방과 노동자 건강권 사수를 위한 마창지역 공대위는 근로복지 공단창원지사 항의집회를 시작으로 사건이 알려지도록 7월 29일 유족과 공동대책위가 영등포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두 번의 농성장 침탈과 탄압 속에서 ‘산재노동자 이상관 자살 책임자처벌과 근로복지공단개혁을 위한 전국순회투쟁’ 등이 지속되었고 155일간 투쟁을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노동운동 활동가 희생자
여성해방운동가 이경숙 선생

1949년 충남 공주의 태어나, 열심히 일하는 소작농은 열심히 일해도 살기 힘들고 일 안하는 우리는 왜 잘 사는 것인지 고민을 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눈을 뜬 선생은 모두가 잘사는 평등한 세상에 대한 꿈과 이상을 갖고 실천활동을 하였습니다.  농촌을 잘 살게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4년간 농촌 야학을 하였으나 야학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도시 노동자로 떠나는 것을 보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시 노동자가 가장 소외 받는 계층임을 알게 되고 노동자의 도시 마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노동상담소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소모임을 만드는 역할을 하면서 상담도 함께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여성 노동자 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수출자유지역에서 해고된 여성노동자와 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92년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 만들고 여성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도록 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2002년 여성정치세력화의 꿈을 갖고 민주노동당 후보로 출마하여 경상남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여성, 농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활동을 하였으나 2004년 9월 3일 과로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동운동가 홍여표 동지

고 홍여표 1962년 함안에서 출생하여 1987 효성중공업에 입사하였습니다.  입사하던 당시는 우리지역의 노동운동이 활성화 되고 노조가 만들어지던 시점입니다.
1990년 노조민주화운동으로 인해 해고되면서 회사 안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지역에서 계속적으로 노동권 확보를 위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당시 투쟁을 하다보면 구속될 일이 많았는데, 고인은 주어진 역할을 거부하지 않고 선구적으로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치열한 삶을 살던 중 암 선고를 받고 2014. 2. 13.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동운동가  변우백 동지

고 변우백동지는 1974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산 지산간호전문대학 풍물패 동아리 활동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고 변우백은 그의 선량한 웃음처럼 참 착한 사람입니다. 2000년 청년진보당, 사회당, 전국노동자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도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싸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2003년 두산중공업에서 故배달호 열사가 분신했을 때는 열사투쟁 대책위원회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무를 도맡아 했습니다.
그 후 두산중공업 사내하청 (주)DECCO 입사하여 비정규직없는 세상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또한 노동자들이 죽지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권리를 위해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에서 활동하며 2006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교육편집팀장을 역임했습니다. 2008년 5월 16일 두산 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로 일하던 중 지게차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산업재해를 추방하고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던 활동가가 산업재해로 죽었습니다. 두산중공업 책임자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소했으나 창원지방검찰청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습니다.
노동운동가  금보라 동지

고 금보라 동지는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경상대를 나와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7기 범청학련 통일선봉대' 활동을 하기도 한 금보라 동지는 경상대 총학생회 학원자주화 추진위원장(2005년)을 지냈습니다.

2009년 민주노총 일반노조 사무차장을 맡으면서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고, 2012년 일반노조 중부경남지부 부지부장을 했습니다. 고 금보라 동지는 2013년 4월 5일 창원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어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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