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호]아프면 쉴 권리, 상병수당 시범사업과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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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4-01-18 11:58
조회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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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조  시민건강연구소

아프면 쉴 권리는 건강권 뭐 그런건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아프면 쉴 권리’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아파도 이 악물고 출근하는걸 미덕으로 살아온 노동자들에게 갑자기 찾아온 선물 같았다.
질병관리청장이 매일 뉴스에 나왔고, 아프면 일하지 말고 쉬어달라 했다. 세상이 바뀌려나 했다. 그리고 2022년 정부가 아프면 쉴 권리,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정부는 2023년 2차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고, 내년에 시범사업의 성과를 평가 분석해서, 2025년부터 상병수당 제도가 시작될 예정이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상병수당이 뭔지 잘 모른다.

아프면 쉴 권리는 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건강권)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건강보험을 가입해 주지 않은 사업장의 이주노동자를 생각해 보자.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도 적게는 몇 만원 혹은 십만원을 훌쩍 넘기는 돈을 내야한다. 자연스레 아프면 약국을 가거나 참는다. 이 사업장에서 직장건강보험을 가입해 주었다. 이제 몇 천원이면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병원 가느라 하루 공치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일당과 수당이 쏙 빠진다. 2-3일 쉬게되면 더 큰일이다.
건강권은 아플 때 건강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조건에 대한 권리다. 아프면 쉴 권리는 건강서비스를 이용하느라 발생한 손해를 보장할 권리다.
노동자들이 잘 알고 있는 산업재해 제도는 애초부터 이 두가지 권리가 보장되었다. 산업재해로 승인 받으면 치료(요양급여)를 받을 수 있고, 일하지 못하는 동안 휴업 급여가 평균 임금의 70%정도 보장된다. 하지만, 산업재해가 아닌 질병의 경우, 이 두 번째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다. 상병수당이 바로 이 두 번째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상병수당 시범사업의 내용은 무엇이고, 문제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고소득 국가는 사회보장제도가 형성되는 초창기부터 상병수당 제도가 있었다. 국제노동기구의 관련 협약도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
한국은 2000년 국민건강보험법 제정 당시 상병수당의 법적 근거가 포함되었지만, 시행되지는 않았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상병수당을 포함한 정책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이후 노동시민사회에서 한번씩 상병수당의 요구가 있었지만, 정치적 힘이 모이지 않았다. 그 기회는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감염병 위기로부터 찾아왔다.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2022년 1단계, 2023년 2단계를 시행하고 있다. 급여는 최저임금의 60%를 각 모형별로 정해진 최대 기간 내에서 보장하는 서비스의 형태(입원 혹은 외래 등)에 따라 일하기 어려운 기간 혹은 입원기간 동안 지급한다. 아프면 첫 날부터 상병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대기기간이 있다. 모형1을 예로 설명하면, 부천과 포항시 주민들이 질병으로 쉬게 될 경우, 통원치료나 입원치료 모두 상병수당의 대상이 된다(입원여부 제한없음). 교육받은 의료인이 판단하여 정한 기간(근로활동 불가기간) 동안 상병수당을 지급받는데, 일단 쉬기 시작한 첫 7일을 제외한 8일째부터 수당이 지급된다. 그리고, 최대 90일까지 지원받는다(위표).

그런데, 현재의 시범사업은 문제가 많다.
일단 급여 기준이 최저임금의 60%다. 국제노동기구의 협약(1969년)은 종전 소득의 60%이상을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상병수당을 시행하는 국가들 대부분이 종전 소득의 50% 이상을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시범사업은 ‘최저임금’기준이다. 말 그대로, 최소한의 삶에 대한 권리만 보장하고 있는 샘이다.

둘째, 1단계 시범사업에서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처럼 홍보했지만, 제도권 외부의 노동자는 손쉽게 제외한다. 최근 소득 혹은 최근 고용관계를 증명해야하는 조건이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의 제도 진입을 막고 있다.
심지어, 2단계 시범사업 계획이 발표되면서 갑자기 대상집단이 모든 노동자에서 소득 하위 50% 노동자로 변경되었다. 보편적 권리로서의 상병수당 제도 취지를 해치는 변화다.

셋째, 국제노동기구는 최소 1년 동안 급여를 보장할 것을 협약했다. 그런데, 한국은 최대 120일이고, 그마저도 모형2와 4를 제외하면 90일까지 보장한다. 국외 대부분의 국가가 평균 6개월 이상을 보장하는 것과도 큰 차이가 있다.

넷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로 모든 의사 결정이 관료와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형식적인 자문기구에 양대 노총이 참여하고 있지만, 의사 결정의 권한은 없다. 한편, 현장 노동자들의 무관심도 정부의 노골적 노동자 참여 배제를 견제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진작부터 아프면 쉴 권리를 쟁취한 사업장이다! 뭐가 달라지는가?

이 쯤에서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어, 우리 회사는 진작부터 단체협상으로 유급병가를 보장하고 있는데’라는 생각이다.
사실 상병수당은 유급병가와 한쌍의 제도다. 아프면 초기에 유급병가로 치료를 받고, 그 기간 동안 회복하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상병수당의 보장을 받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재 노동법은 유급병가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사업장은 단체협약으로 보장받는 유급병가가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무급이다. 결국 작은 병은 참고 버티다가 병을 키워 7일 이상은 치료받을 중병이 되면 상병수당의 보장을 받게 될 수 있다. 한편, 이미 유급병가를 보장받고 있는 사업장은 상병수당 제도보다 현재의 유급병가 보장 범위가 더 넓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국가복지의 형태로 상병수당이 도입된 이후, 자본은 기업복지의 형태인 유급병가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하는 물음 말이다.

역사적으로 국가복지의 확대 이후 기업복지의 축소 시도는 적지 않았다. 자본은 한 몸으로 권리를 축소하기 위해 운동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각자가 처한 위치에 따라 권리를 다르게 해석한다면, 이 싸움은 질 수 밖에 없다. 총노동의사회적 연대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질문을 되새겨 보자. 정년 퇴직 후에 나는 노동하지 않을 것인가? 다음 세대가 노동하는 사회는 어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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