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호]누구나 언제나 결심없이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기를

[활동 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8-12-27 14:46
조회
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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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화섬식품노조 부산경남지부 조직국장


화섬식품노조(전에는 화섬노조였다. 기존에도 식품 사업장이 많았지만 최근 파리바게트등이 노조에 가입하면서 ‘식품’을 노조명칭에 포함했다)에서 일한지 벌써 15년째다.
화섬식품노조 부경지부는 경남전역에 총 24개의 조직이 가맹되어 있다. 직책은 조직국장이지만 조합원교육도 제법 담당하고 있다.
‘혹시 꿈이 뭐였어요?’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어 문을 두드리는 분들께 나는 묻곤 한다. ‘혹시 꿈이 뭐였어요?’ ‘어릴 적 꿈이 노동자였던 사람 있어요?’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피식 웃음부터 흘린다. 무슨 그런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분들도 많다. 그리고 다음 질문을 던진다.
‘노동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냐고.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냐고. 내가 생각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대답들이 터져 나온다.
'일 하는 사람' ,'나 자신', '우리'라는 대답이 오히려 평범하지 않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1시간 정도 교육을 마치고 나서 나는 꼭 당부를 드린다. 오늘 집에 가면 꼭 자녀들에게 물어 보시라고. “국장님, 저 번에 교육 듣고 집에 가서 물어 봤어예”, “뭐 말입니꺼?”  “ 그 있잖아예, 노동자하면 무슨 생각이 드냐고”
“그래, 뭐라카든가예?”
“예....그게. 우리 아는 초등학교 5학년인데, 평소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거 하고 똑 같이 말하더라고 예. 막노동하는 사람, 돈 못 버는 사람,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데예. 막상 아 한테 그런 이야기 들으니까 참 기분이 이상하이 그렇데예.“

‘노동조합 있어요? 라고 물어보지 않는 사회’

하루 24시간 중 3분이 1이상을 생활하는 일터. 직장을 구하기 위해 사원모집 공고문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상여금은 있는지, 있으면 얼마나 되는지, 학자금은 있는지, 4대보험은 들어주는 지, 토요일 일요일은 쉬는지, 주차수당은 주는지....하지만, 노동조합이 있는 지 없는 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설령 노동조합이 있더라도 구인광고에 [노동조합 있음]이라고 표시하는 곳도 없지만 말이다.

노동조합 있으면 좋죠! 문제는, 결심이 필요한 한국사회.

노동조합을 만들 결심을 하고 상담과 교육, 토론과 회의를 거쳐 실제로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확인되는 것은 노동조합은 필요하고 있으면 좋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은 나라를 구하는 것에 버금가는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 경험상 여기에 예외란 없었다. 나 스스로도 노동조합 설립 초기에 무엇보다도 강조한 것이 '비밀유지'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헌법 33조에 명시되어 있는 노동3권을 굳이 강조해서 설명해야 하고, 그러니 노동조합은 불법적인 단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힘주어 말해야 했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니, 우리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고 토해내야 했다.

언제나 누구나 노동조합을 곁에 둘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노동존중사회

올 해 4월. 김해에 있는 모 식품회사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였다. 3명의 청년이 상담을 왔다. 탄력근로제 도입과 연차휴가 강제사용 상여금 기본급에 불편함이 많았다. 무엇보다 현장 관리자들의 비인격적 처우가 목에 걸렸던 모양이다. 장장 6개월의 조직사업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9월 이 회사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난 뒤, 가장 먼저 현장에 나돈 이야기는 우리 회사에 노동조합이 생겼으니 우리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권리를 찾자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민주노총이 만들어져서 회사가 어려워진다', '업체들이 물량을 안 주려고 한다', '회사 망하게 생겼다', '문을 닫겠다'는 말 이었다. 심지어 친인척을 동원하는 치졸한 방식도 쓰여졌다. ‘처남, 원청(여기서 말하는 원청은 우리노조가 만들어진 곳이다)에서 연락이 왔는데 처남이 노동조합 주동자라고 하면서 처남이 노동조합 탈퇴안하면 우리한테 물량을 안 준단다. 노동조합 그거 안하면 안 되나?’
대통령까지 나서서 노동조합 결성을 막는 부당노동행위를 강력한 의지로 단속, 처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이 ‘큰 결심을 하지 않아도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는 데는 아직까지 별반 효과가 없는 듯 하다.

나도 아버지(어머니)처럼 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청소년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그 시절 단 하나 확고한 꿈이 있었다. 무슨 직업을 갖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고된 노동, 벗어날 길이 없는 가난에 허덕이는 부모님을 보면서 수 천번, 수 만번을  결심하고 결심한 꿈 이었다.
한 번도 부모님께 고백하지 못했지만,
정직하게 노동하며 자식들을 보살피며 평생을 헌신하신 부모님께 얼마나 부끄럽고 죄스러운 결심이었는지 지금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왜곡되고 굴절된 노동과 노동자를 제자리로 되돌리는 가장 확실한 길은 노동조합을 많이 조직하는 일이다.
물을 동그란 그릇에 담으면 동그란 모양이 되고,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난 모양이 된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이 민주노총이기는 하지만, 민주노총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버린지 오래다.
나는 모양이 어떠하든지 이름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노동조합을 많이 많이 만드는 것이 우리사회를 진일보시키는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나는 그래서 말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노동하고 노동조합 활동하시면서 세상을 보다 이롭게 하는 아버지처럼, 어머니처럼 나도 살고 싶습니다’라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그리고 함께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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