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호]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이유

[활동 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8-12-27 14:49
조회
107

삼성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 구술기록단


시커먼 하늘에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이 자리하고, 크레인에서 뻗어나온 철제 와이어가 눈앞에서 춤을 춘다. 어디에도 피할 자리가 보이지 않아 한발자국도 내딛을 곳 없는 배 위, 구술자님이 그날 이후 지금까지 살고 있는 지옥이다.
살고자 했던 작은 본능은 공포가 되어 일상을 삼켜버렸다.
그는 지금 온몸으로 지옥을 통과하고 있다.
그가 힘겹게 내 딛는 한 걸음을 우리는 함께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홍세미기록활동가)
5월부터 삼성크레인사고 피해노동자를 만나고 한 달에 한 번 구술팀 교육과 회의에 함께하며 산재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정리했습니다. 제가 만난 노동자는 물론 다른 분들이 만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절박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피해자와 산재로 보호받지 못한 채 여전히 고통의 시간을 힘겹게 보내고 있을 노동자들이 많이 걱정됩니다. 구술팀 작업을 통해 삼성크레인 사고로 고통받는 노동자의 문제가 좀 더 세밀하게 조명되고 사회적인 보호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사고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 앞으로 이런 사고가 재발되지 않길 바랍니다. (현미향 노동보건단체활동가)

박철희 씨에게 느닷없이 들이닥친 고통은 그의 삶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는 커다란 의문에 빠졌다. 사회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규범대로 착실하게 살아왔는데,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 ‘이유’가 될 만한 자들이 책임을 부인하므로 그의 고통은 의미조차 남길 수 없는 거대한 ‘통증’ 그 자체에 머물러 있다. 해소되지 않는 억울함이 불러일으키는 자책과 후회가 자꾸만 찾아든다. 삼성은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안겼고, 삶의 재건조차 막고 있다. 그러나 박철희 씨는 부서진 채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 진실을 본 사람으로 말할 의무를 스스로 짊어졌다.
삼성은 결코 그의 존엄과 용기만은 부수지 못할 것이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한 번의 강의가 6개월의 인연이 되어 한편의 기록에 이름을 슬그머니 올렸다. 처음과 끝을 함께 하기란 쉽지 않기에 내심 뿌듯하지만, 다사다난한 여정의 증거이기도 하기에 수많은 마음과 시간들이 뒤엉키기도 했다. 이방인의 자리에 있었을 때 이 참사는 내게 재난과 산업재해 그 어딘가에 위치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은 참사는 일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확인한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전해야할 이유다. 완주한 기록의 동료들에게 박수를, 전체 기획을 맡아 늘 헌신해준 이은주님께 깊은 경의를 전한다. 더불어 용기 내 당신의 삶의 한 자락을 들려준 구술자분들과 이런 시공간을 열어준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금속노조 경남지부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름조차 모르는 당신들에게 빚져, 내가 오늘을 산다.  (유해정 기록활동가)
무게감.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구술작업을 하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무게감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혹시 내가 인터뷰를 하면서 또 다른 상처를 새겨지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 그러다 보니 정해진 일정을 번번히 어기게 되었고, 담당자를 걱정시키게 만들었다. 내가 느낀 무게감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파서 포기하지 않았지만, 끝임없는 포기의 유혹을 뿌리쳐야했다. ‘무게감, 벗어던져버려.’ 지금 모든 자료들이 내 손을 떠나고 나니 무게감 만큼의 홀가분함이 나를 감싸고 있다. 좋다. 무게감을 견뎌준 내가. 그리고 ‘나도 그래’ 라고 말해준 우리구술팀. 계속적인 지지와 격려를 해준 산추련의 이은주 국장님 ‘감사합니다’(문선현 심리상담사)

 

기록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조선소 노동자들의 삶은 제 얕은 노동자,조선소에 대한 이해를 넘어선 무거움이였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오늘도 투쟁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조선소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삶과 죽음의 기로로 보였습니다. 한순간 죽거나 다칠 수 있는 노동의 현장에서 그들은 “팔자”라는 단어로 그들의 삶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노동을 하다가 죽거나 다치는 것이 그저 “팔자”인 것인가? 기록 활동을 하면서 사측이 노동자들을 좀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했더라면. 노동자들을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모품이 아니라 그들이 ‘누군가의 아버지고, 어머니고 아들이고 딸이라는 것’을 생각했더라면 과연 이들이 이렇게까지 죽음을 앞에 두고 일을 했을까, 그날의 사고가 일어났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번 큰 사고가 나고 나면 “안전의 부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빨리 빨리”가 불러온 참극이라며 몇 일간을 호들갑을 떨다가 그 사건사고는 잊혀집니다. 그러나 재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일하고 싶지 않은 그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야합니다.  어떤 노동현장에서도 죽거나 다치는 일이 “팔자”라는 단어로 치부되지 않는 한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재해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산재와 트라우마 치료가 제대로 제공되고 노동자들이 그러한 서비스를 받는데 있어 어떠한 어려움이나 불편감을 호소하지 않는 한국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동자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노동절’조차 쉬지 못하고 일하다 희생된 조선소 노동자들의 명복을 기립니다. (한채민 심리상담사)

‘시간이 지나도 왜 이토록 나아지지 않는걸까, 증상을 몸으로 겪고 있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데, 생활에서 그 고통을 같이 짊어지고 힘들기만 한 가족의 마음은 오죽할까’하는 생각에 그저 미안하기만 하다가도, 이해하지 못하거나 답답해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시선과 말들이 자신에게 던져지면, 그게 점점 칼처럼 느껴져서, 결국 마음의 문을 더 닫게 되는 모습과 그 관계의 사연들을 접하게 될 때마다 나의 안타까움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누구보다도 가족들이 구술 글들을 보시고, 이 트라우마가 이해 되어서 생존자의 곁을 지키는 마음의 고통도 더 줄고, 서로에게 더욱 힘이 될 수 있었으면 했다.
회복을 위해 필수적인 것들을 거부하게 되는 트라우마 증상의 아이러니 속에서, 비록 가늘고 약하더라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관계의 끈을 놓지 않도록, 그 속에서 외상후 성장의 기회가 생길 수 있도록...                (최지명 임상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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