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호]노란봉투법=노동 3권 회복법

[현장을 찾아서]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2-11-04 13:45
조회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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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혜 변호사


우리 헌법은 노동 3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과 사용자에 대항해 개별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유형력의 행사인 쟁의행위가 사용자의 생산 활동이나 영업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때면 단체행동권은 마치 더 이상 헌법상의 권리가 아니라 하위 법률상의 권리 혹은 법원의 해석에 맡겨진 권리처럼 취급되어 왔다.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2009년 벌인 77일간의 파업에 대해 사 측과 경찰 측은 노동자들을 상대로 47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였고 13년이 흐른 지금도 그 소송은 진행 중이다. 47억이라는 큰 금액이 주는 위압감과 더불어 복직 후 첫 월급부터 가압류를 당하면서 13년 동안 압류나 추심에 대한 위협을 안고 살아온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13년간 계속된 처벌과 괴롭힘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소송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또 다시 대우조선해양의 하도급업체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는 47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었다.
노동자는 1㎥ 남짓한 공간에 스스로 자신을 가두고 같이 살자고 절규했는데 그 절규에 대한 답이 470억 원짜리 소장으로 돌아왔다. 노사 간 협상 테이블에도, 마지막 합의안에 서명을 할 때도 공식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들에게 직접 소송을 해 왔다. 공권력을 투입할 수 있다는 겁박으로 위기를 고조시킨 다음 협상을 성사시키고 협상안에 도장을 찍지 않은 제3자의 지위에서 원청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노사 간의 협상안을 사실상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쟁의행위의 뒤에는 항상 거액의 손해배상금 청구와 형사처벌을 우려해야 했다. 돈과 처벌로 노동자들을 길들이고 노조를 위축시키려는 시도는 이렇게 반복되어 왔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의 끝에는 법과 법원이 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2조와 제3조에서는 노동쟁의를 노동관계 당사자 간의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규정하고,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로 파업, 태업, 직장폐쇄 등을 쟁의행위로 정의하면서, 노조법에 따른 쟁의행위로 인해 사용자가 입은 손해는 노조와 근로자에게 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정하고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면책을 선언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우리 노조법에는 정당한 쟁의행위를 이유로는 형사처벌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노조법 제4조), 노조원에 대한 징계도 금지하고 있다(노조법 제81조 제1항 제5호).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행동권은 사용자의 생산 활동을 방해하고 영업에 곤란을 초래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권리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용자를 상대로 그 어떤 목소리도 관철시킬 수 없었던 노동자들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국민의 기본권’으로 받아들여진 권리이다. 파업, 태업은 그 자체로 사용자의 생산 활동에 타격을 주는 것을 본질로 하는 권리이므로 사용자에게 영업 손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가 숱하게 보고 있는, 보아 왔던 쟁의행위에 대한 법원의 손해배상 인정 사례들을 보면 쟁의행위의 이 본질적인 침익적 요소를 불법적인 것으로 보는 것 같은 시각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우리 판례가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기준을 매우 엄격하고 좁게 제시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우리 대법원 판례가 인정하는 정당한 쟁의행위는 그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로 될 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고, 목적 면에서는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것이어야 하며, 시기와 절차가 법령의 규정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방법과 양태에 있어서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는 등 반사회성을 띤 행위가 아닌 정당한 범위 내의 것이어야 한다. 현행 노조법 제37조 이하를 근거로 삼아 우리 법원은 일부 조합원이 노조의 결정 없이 파업을 하면 불법이 되고, 조정이나 중재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도 불법파업이고, 파업을 하려면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는 투표 과정에서 절차적인 하자가 있어도 불법 파업이라 선언했다. 국가의 노동정책이나 노동 관련 법률 개정 등을 이유로 한 파업은 당연히 불법이다.

정리해고를 이유로 한 파업도 불법이다. 당장 내가 회사에서 해고될 수도 있는데 파업을 할 수 없다. 헌법에서 볼 수 없었던 단체행동권에 대한 이 같은 제한들이 노조법을 통해 창설되었고, 그 제한을 실제 사례에 적용하는 법원에서 또 한 단계 엄격한 수준의 ‘정당성’ 기준을 설정한 것이다. 이로써 ‘정당성을 갖춘 파업’, ‘합법적인 파업’은 마치 집회-시위의 자유와 비슷한 수준의 권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질서정연하게 구호 외치고 피케팅하면서 노동자의 요구 조건을 얻어내라는 것이다. 그것도 교섭이 결렬된 상황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말이다.

헌법 정신에 반하는 현행의 노조법 규정과 법원의 ‘정당한 쟁의행위’ 판단 기준에 더 이상 매달릴 수 없다. 절박한 심정으로 파업에 내몰렸던 노동자들이 다시 절벽 끝에서 뛰어내리는 일이 더 이상 생겨나서는 안 된다.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개정안은 이와 같은 그간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나온 반성적인 법률안이다. 개정안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였고, 근로조건뿐만 아니라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주장의 불일치로 인한 분쟁상태도 노동쟁의의 범주에 포함하였다. 특히 폭력이나 파괴 행위로 인한 직접 손해를 제외하고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 노조나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하면서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손해배상액의 상한을 조합원 수, 조합비, 노조의 재정규모 감안하여 정하도록 하여 쟁의행위에 대한 민사 면책의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그 요건을 명확히 하였다.

아직 통과되지도 않은 이 법률안을 두고 벌써부터 온갖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사용자의 권한 범위 넘어서는 사안까지 쟁의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거나 노사 간 제반 문제를 무조건 쟁의행위로 접근하려고 할 것이라거나, 사용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등의 반론들이 제기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비판과 우려는 표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사용자 본인의 권한을 넘어서는 혹은 자신의 권한이 아닌 사안으로 인해 사용자는 그동안 이익이나 혜택을 받아온 것은 없는지, 사용자도 노동자도 그 누구도 관련이 없는 사안이라면 노동자들이 임금을 포기하면서 파업을 하겠는지, 반드시 파업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결정되는 것인지, 영업 행위와 생산 활동을 잠시 중단시키는 것이 쟁의행위의 본질이므로 그로 인한 영업이익 손실은 손해배상 청구의 대상이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합헌적인 개정안의 내용을 두고 재산권 침해라 주장하는 것은 단체행동권이 싫다는 이야기의 다른 표현일 뿐이 아닌지’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노란봉투법이 특별한 내용의 법률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누리지 못했던 노동 3권을 헌법상 기본권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당연한 내용의 법률안일 뿐이다.

한 국가가, 한 사회가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하는가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그 사회의 철학적 깊이와 함께 경제·사회적인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다.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대한민국 사회가 노동과 인간을 대하는 데에서 한 차원 높은 예의와 성숙함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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