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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시간은 흐르고 있다.
4월 16일 이후 멈춰버릴 것만 같았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
그리고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 모든 것이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가해자인지.
이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 피해자는 잔뜩 움츠러 들고,
가해자는 저 높은 곳에서 피해자에게 그만하라고 요구한다.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여전히 정치권력의 최상위층에서 이 사회를 노려보고 있다.

교황께서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했다. 맞다.
그렇다면 정의는? 정의는 바로 행위에 대한 책임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정신이다. 즉, 행위를 한 만큼 책임을 지운다는 것이다. 이 섬뜩한 표현이 관용의 정신이기도 하다. 이유는 행위 이상에 대한 처벌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행위를 한 만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지금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잘못한 것을 밝히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그래서 더욱 꽁꽁 감춘다. 여기에 용서와 화해는 없다.
사회적 대타협도 없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기념하자고 한다.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한다.
그런데 머릿 속의 기억은 점점 사라져간다.

기억은 사라지고 기념탑을 중심으로 인공 구조물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 뿐이다.
우리 사회에 수 많은 기념 인공 구조물이 존재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이미 과거의 그날로부터 멀어져 있다.  
세월호도 그럴 것이다.  

독일의 게르츠 부부는 1986년 사라지는 반파시즘 기념비를 세우며 “우리는 이 기념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도록 함부르크와 하부르크의 시민과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을 초대합니다.  각각의 서명들은 우리가 항상 깨어 있도록 할 것입니다. 12m의 이 기둥이 서명으로 가득 차면 기둥은 단계적으로 점점 바닥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이 기둥이 완전히 바닥으로 가라앉으면 파시즘에 반대하는 이 기념비가 있던 자리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항상 우린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의에 대항하는 것은 기념탑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기념비는 1993년 땅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대중의 참여가 기념탑이 사라지는 속도를 결정하게 만들었다.

가해자가 처벌 받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가 용서해야 할 시기라는 말을 하는 사회,
기념탑을 중심으로 인공 구조물만 존재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우리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시 한번 이 말을 기억하고 싶다.
“불의에 대항하는 것은 기념탑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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