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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인더를 들고 사상작업만 해오다 다리가 뻗치는 통증이 잦아서 병원을 찾았는데 허리가 안좋다는 말만 했다. 치료를 받아도 별다른 호전이 없어서 큰 병원을 가게 되어 좌측 대퇴부에 피가 안통해서 뼈가 괴사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수술을 받았고, 치료를 받다가 현장에 복귀하여 또다시 사상작업을 했다.
1년 정도 지났을까.... 그때와 같은 통증이 이번엔 양 다리에 느껴졌다. 가까운 병원에서 수술까지 했던 병이 이번엔 양쪽으로 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수술을 해야만 한다는 것도..... 진해 D사업장에 있는 아우에게 사정을 털어놓자 혹시 작업과 연관은 없는 것인지 알아보게 되었고 사무실에 전화를 하게 된 것이었다.
이 상담을 맡게 된 것은 지난 해 쌀쌀해질 무렵 진해에서 활동하시던 분의 소개 덕분이었다.
이미 승인받은 사례들이 있었고 사상작업이라는 것이 하루 중 앉았다 서기를 수도 없이 반복해야하고 쪼그리거나 비틀린 불안정한 자세로 작업을 많이 해야하는 작업이므로 인과관계는 있을 것 같았다.
불안정한 작업자세가 질병을 발생시켰거나 악화시켰다는 내용으로 요양신청을 하고 추운겨울이 지나고 창원대로에 벚꽃이 활짝 피기까지 담당자는 주치의를 포함하여 4명의 의사에게 소견조회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문의협의회에 회부하여 최종결정을 내렸다.
불/ 승/ 인
이유는 의학적으로 원인이 술이나 담배, 약물에 의해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나머지는 원인 미상이며, 산재보상보험법에서 무혈성괴사증의 직업병은 고압작업에 노출되었을 때인데 이러한 요건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어떤 작업을 했고 그 작업이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사한 것이 아니라 좁은 틀로 정해놓은 산재보상보험법의 잣대에 딱 들어맞는지 아닌지만을 그 긴 시간 동안 재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는 "여러 전문의 선생님들이 참석하신 자문의협의회에서 결정난 사항이기 때문에 저희는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라고 잘라 말했다.
정말 궁금했다. 공정하다는 자문의협의회에서 어떠한 내용으로 논의가 되었길래 불안정한 사상 작업자세가 고관절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결정이 났단 말인가!!
더욱더 숨막히는 것은 자문의협의회에 참석한 의사들이 비공개 요구를 했기 때문에 행정자치부법에 의해 내용에 대해서 전혀 공개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신상에 관련된 일이니 당연히 알 권리라는 것이 있어서 행정정보공개신청이라는 절차도 만들어지게 된 것인데, 더구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 자문의협의회 내용을 보여줄 수 없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현장의 노동보건활동가들, 산재환자들과 공단에 항의를 갔으나 자문의협의회가 몇 명으로 구성되었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무슨 내용으로 진행이 되었는지 전혀 말해 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유인 즉, 그렇게 하면 누가 자문의를 하겠냐는 것이다.
자문의를 두지 않으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다.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결정에 있어서 공정성을 획득하기 힘들고, 공개가 되지 않으면 결정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성이 없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환자를 보지 않고 서류로만 하는 자문의 소견이 더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고, 사람마다 몸과 질병의 상태는 천차만별인데 전공책에 나와 있는 최소한의 기준에 맞추어 치료기간을 재단하는 역할 말고 저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자문의 제도의 폐해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근로복지공단은 자문의를 대폭 확대하여 자문의 제도를 한층 더 강화시킬 것이라 한다.
항의방문에도 개의치 않고 자문의협의회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두 번째 방문 때는 도저히 안되겠던지 소견 결정을 옮겨 적어왔다. 내용 어디에도 사상작업으로 발생했던 불안정한 작업자세가 대퇴부의 무혈성괴사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내용은 없었다. 어떤 자문의는 딱 7자만 적었다. " 불 승 인 이 타 당 함 " 이 일곱글자가 산재환자에게는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게도 만든다는 것을 서류만 들여다보는 저들이 알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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