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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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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호]침묵을 강요하는 사업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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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 노동자가 사망했다.
최근 구조조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매우 심했다. 그 회사는 노동자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명예퇴직이니 권고사직이니 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떠나게 만든다고 했다. 고인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심적 부담이 매우 심했다. 회식을 마치고 새벽에 집 앞에서 사망했다.
고인의 동료들은 장례식장에 찾아와서 유족들에게 회사 사정을 이야기했다. 유족은 회사 사정으로 고인이 무척 힘들어했다는 것을 동료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회사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동료들은 유족에게 회사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유족은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유족은 장례가 끝나고 산업재해를 신청하기 위해서 회사에서 발생한 모든 일들을 알기 위해서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사정이 바뀌었다.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그 이야기를 꺼내기 싫어했다. 이제 와서 이야기해서 무엇 하겠느냐는 것이다. 유족은 고인의 사망 전후에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서 진실만을 이야기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지만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렵게 전화통화가 됐을 때도 녹취하지 않으면 일부 이야기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의 지시가 없었다면 모두들 이야기 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을 거라고 유족은 생각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의 눈치 때문에 나서길 꺼려했다. 산재신청을 하기 위한 진행은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
한 여성 노동자는 산재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이 노동자는 식당에서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식당에서 10년 동안 일을 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찬거리를 검수하고 다듬고 점심 준비를 하고 점심시간에 배식을 하고 점심시간이 끝나면 뒷정리를 했다. 이러한 일들을 하다 보니 여성 노동자의 양 팔꿈치에 염증이 생겼다. 그래서 산재를 신청했다. 팔을 사용하지 않으면 작업이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산재는 승인될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왜 산재가 되지 않았을까? 확인 결과 회사의 거짓말과 동료들의 침묵이었다. 회사는 이 여성 노동자가 식당에서 직접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하는 일을 한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도 그렇게 진술하라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소수의 동료들이 그 여성은 식당에서 직접 일을 했다고 진술했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진술을 번복했다. 회사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 여성 노동자는 동료들에게서 외면당했다. 앞으로 회사에 어떻게 복귀할지 막막했다.
재해를 당하고 난 뒤에 동료들에게 진술서를 받으려고 하면 회사의 눈치 때문에 선뜻 진술서 작성을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비인간적인 일들이 발생하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침묵하는 동료들에게만 그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침묵에는 그것을 강요하는 거대한 힘이 작동하고 있다. 즉, 침묵하지 않으면 회사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불이익을 개인이 다 짊어져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노조가 없는 일부 사업장의 경우 잘못하면 해고까지 당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뜻 진술서를 작성해주지 못한다. 이는 그동안 ‘함께하는 동료’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재해자에게는 신뢰가 무너지는 고통을, 동료에게는 양심적 고통을 주고받게 함으로써 종전의 관계가 무너지는 현실 속에 갇히게 한다. 그 뒤에는 이렇게 이중고통의 관계를 조장하는 사업주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재해자를 위해서 진술하는 동료에 대해서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허위 진술을 강요하는 사업주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과 손해배상 책임까지 지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재해발생의 입증책임을 재해자가 아닌 사업주에게 물어야 한다. 현행법은 재해자가 모든 입증을 다 해야 해서, 입증을 위한 모든 자료와 진술을 사업주로부터 받아내야 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사업주가 100% 협조를 해 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술하는 동료에 대한 고용이나 그 밖에 대한 불이익이 없도록 법적인 조치가 마련됨과 동시에 재해입증의 사업주 책임을 통해 재해자와 동료가 이중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회와 사업장을 바꾸지 않고서는 인간답게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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