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호] 2017. 9. 7. 사드가 소성리를 짓밟은 날

[활동 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7-10-17 14:34
조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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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학(성주 주민)

 

2017년 9월 6일 수요일,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각. 며칠 전부터 감돌던 소성리의 전운이 이 날 결국 현실이 되었다. “긴급! 국방부 두 시, 기자에게 사드 반입 통보! 6시보다 더 일찍 소성리로 집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상보다 일찍 통제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바로 소성리로 달려와 주십시오!” 문자를 보는 순간 손끝이 떨렸다. ‘어떻게든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서 막아야 한다...’ 소성리로 달려가는 내내 이 생각뿐이었다.

소성리로 향하는 도로 곳곳은 경찰 차량이 줄을 섰고, 렉카차와 용도를 모르는 차량들이 뒤를 이었다. 나의 비장함에 비해 경찰들은 표정들이 여유로웠다. 마음이 아팠다. 같은 나라에 살고, 같은 상황을 직면하고, 같은 곳을 향해 가는데 이렇게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차단된 주 도로 대신 농로를 통해 들어간 오후 5시, 소성리는 소리없이 분주했다. 마을회관 부엌에서는 아는 이들이 벌써 주먹밥을 만들고 있었다. 잔멸치를 볶고, 한쪽에서는 밥을 앉히고, 또 한쪽에서는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어 밥을 식히고... 나는 그곳에 끼여 주먹밥을 뭉쳤다. 종이컵 하나에 주먹밥 한 덩이씩. 대형 밥솥 2개를 쉼 없이 돌려 천 개 이상을 만들었다. 밥이 채 식기 전에 뭉친다고 손바닥은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모두 뜨거운 줄도, 힘든 줄도 몰랐다.

갑자기 밖에서 누군가 고함을 쳤다. “모두 나오세요. 저들이 오고 있습니다. 모두 나와 앉아 도로를 막아주십시오!!” 용수철 튕겨나가듯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도로 빈 곳 여기저기를 찾아 앉았다. 나는 도로에 세운 차량 중 하나에 등을 대고 앉아 누군지도 모르는 옆 사람과 스크럼을 짜고 구호를 외쳤다. “사드가고 평화오라!”, “박힌 사드 뽑아내고, 오는 사드 막아내자!!” 비는 오다말다 하고, 경찰 차량에서는 계속 ‘불법’이라며 겁박하고, 바로 코앞에는 ‘하이바’를 써서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경찰병력이 철벽처럼 서서 진압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사드가 들어갈 마을회관 앞 진입로에는 십여 대의 차량이 지그재그로 놓여있었고 그 차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차량 밖에 서 있는 이들과 긴 PVC 같은 것에 팔을 끼우고 있었다. 경찰이 렉카로 차량을 들어낼 경우 몸으로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청심환을 권했다. 얼마나 두려울까... 차마 그들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두려움은 눈을 감아도 전해졌다. ‘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가 절로 터져나왔다.

무서웠다. 무수히 집회를 다녔지만, 400명을 에워싼 8,000여명의 경찰들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하고 버티는 것만 가능한 자세로 마주하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목숨 걸고 사수했던 전교조 결성 때인 1989년 5월도 이렇게 공포스럽지 않았다. 목이 터져라 외치던 구호 뒤로 드디어 저들의 진압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먼저 길 옆 천막을 침탈했다. 그 천막은 기독교와 천주교 천막이었다. 그 안에 있던 십자가와 성경, 묵주들은 경찰들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그들의 폭거는 예상을 초월했다. 온몸으로 막던 남성들은 끌려 나가고, 들려 나가고, 밟혀 나가고.... 바닥에 앉아 있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손깍지를 풀지 않고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공포와 싸우는 것밖에 없었다. “사람 다친다~~ 사람 다친다고~~~~” 그렇게 나도 여경 대여섯 명에 의해 들려 나와 어둡고 컴컴한 곳에 떨어졌다. 분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을회관 앞으로 오니 무대 차량 앞쪽으로 사람들이 눕다시피하며 앉아있었다. 빈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소성리 어머니, 형님들과 원불교 여교무님들이 대부분이었다. 밖에 서 있는 이들에게 소리쳤다. “이곳으로 들어와 앉아주세요. 이 차량을 사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몇 십분 동안 힘겹게 저항하던 내 앞의 원불교 여교무님과 우리는 ‘24기’ 여경 기동대에 무지막지하게 끌려 나갔다. 교무님의 치마가 들춰지고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위에서 누군가가 목놓아 외쳤다. “손 대지마!! 야, 이 **년들아!! 손 대지 말라고.....” 뒤이어 끌려나오던 나는 그 소리에 이를 앙다물고 울음을 참았다. ‘미쳤어... 미쳤어... 문재인은 이제 끝이야...’
정확히 8시 12분. 내 눈 앞으로 사드가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군용 트럭과 덤프 트럭, 뭐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를 차량들이 수십 대 들어갔다. 그 트럭 위로 물병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는 긴 행렬을 덤덤하게 바라만 보았다. 출근을 이미 넘긴 시각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이 하얬다. 무심히 뒤를 보니 저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서 또 누군가가 걸어왔다. 긴 나무막대를 지팡이 삼아 허우적허우적거리며... 아마 소성리로 달려와 달라는 호소에 새벽길을 한달음에 왔지만 경찰 저지로 먼 길을 걸어걸어 들어오는 분들이리라. 그들과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고 고맙고 눈물겨웠다. 늦은 출근을 위해 차를 몰고 나오는 길, 용봉 삼거리 양 옆 수 킬로미터에 승용차들이 나래비로 주차되어 있었다. 밤새도록 차단된 길목마다 싸우고 싸워 소성리로 들어온 연대자들이 세워둔 차량들이었다. ‘저들을 용서하지 않으리라.....’ 난 그 긴 행렬 끝에서 결국 울음을 쏟아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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