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호] 한국산연지회

[일터에서 온 편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7-10-17 14:42
조회
421

김은형


 

가을비가 내리는 밤, 페북에서 1년전 사진이라며 올라 온다.
공장 앞 천막을 치려는 우리를 막으려 나온 관리자들과 실랑이를 벌리고 경찰을 불러들인 회사...가슴이 먹먹하다...

2015년 임단협을 마무리 하지 못한 채 여름휴가를 떠났고 아무도 없는 공장에 의문의 불이 났다. 생산 부서와 사무실, 전산실이 있던 2층 공장을 제외하고 1층과 노동조합과 식당이 있던 3층이 화기에 휩싸였다. 우리는 여름 휴가를 마치고 임시로 외주 공장 KTT에서 생산을 하기로 노사 협의하고 일을 하였다.
2015년 임단협 교섭을 진행하였지만 해를 넘겼고 2016년 새해에도 지난 해 교섭을 진행하던 중 2월 , 현장 벽에 부착된 정리해고 예고 공고와 희망퇴직 공고문이 일방적으로 나붙었다. 각 가정으로 통신문이 특급우편으로 왔다. 경영위기로 인한 생산부분 폐지와 정리해고 예고, 희망퇴직서였다.
이제 겨우 한글을 배우던 아이가 아빠에게 정리해고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가슴이 막혀 말문을 열지 못하고 옆에 있던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병든 노모가 누워있는 시골집까지 예외 없이 날아든 가정통지문은 우리의 투쟁이 마무리 될때까지 여섯차례나 왔다. 임신 중인 조합원, 부부 조합원, 병가 중인 조합원 등 모두에게 날아왔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수출 자유 지역에는 많은 외자기업들이 철수를 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공장에서는 노동조합이 와해되거나 민주노조의 깃발을 내렸다. 지난 30년 세월 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외자기업에 맞서 온몸으로 투쟁하며 일본 원정투쟁까지 벌렸지만 공장으로 복직한 사례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수출자유지역 내 있는 많은 공장 중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은 한국산연밖에 없는 조건에서 우리의 투쟁을 승리 할 것이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희망이 없는 우리의 투쟁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 속에서 시작되었다. 투쟁을 시작하고 9월 이전까지 남은 조합원은 34명이었다. 9월 30일 마지막 희망퇴직서가 가정으로 우편 발송 되었지만 34명은 마지막까지 투쟁을 결의하며 남았다. 남은 우리는 경남 전역을 돌아 다니며 우리의 투쟁을 알렸고 시민 선전전과 서명을 받으러 다녔고 일본 대사관, 일본 영사관, 국회, 산켄코리아 서울 영업점 시위를 이어갔다.
지역의 도,시의원이 모두 외자기업 횡포를 규탄했고 지역 대책위와 지역의 진보적인 단체와 시민들의 지지가 이어졌지만 한국산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모든 중재와 중재인을 전부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대한민국의 법도, 국회의원의 요구도 노사가 맺은 단협도 휴지조각처럼 여겼다. 9월 30일 34명이 모두 정리해고 되었고 우리는 길거리로 내몰렸다. 우리는 천막 농성을 이어가며 일본 원정투쟁을 떠났다.10월에 떠난 일본원정투쟁을 해를 넘겨 6월이 되어서야 끝을 보았다.

지금은 너무도 담담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투쟁 기간 동안 흘렸던 눈물과 분함과 억울함, 답답함은 말로 다 표현 하지 못한다. 투쟁기간 내내 이길 수 없는 투쟁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들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며 우리는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영하 16-18도의 한겨울 눈보라 속에도 주변 투쟁하던 모든 동지들이 쉬어가던 나날도 우리는 핫팩을 신발 밑창에 깔고 동상이 되어 가던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하루 종일 일본대사관과 국회앞, 일본 영사관 시위를 이어가며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일본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은 한국의 가족과 동지들을 걱정으로, 한국의 동지들은 일본에서 연말, 연초를 보내며 설명절까지 투쟁을 이어 가던 일본원정투쟁단을 걱정하였다.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서로를 굳게 믿으며 투쟁을 이어갔다.
한국과 일본의 노동단체와 노동, 시민활동가, 시민들의 눈물겨운 연대의 정을 받으며 하루 하루 희망을 만들어 갔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처럼 우리는 모두가 절망의 벽이라고 할 때 말없이 한뼘씩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절망의 벽을 넘었다.
우리는 마침내 희망을 만들었다.

원직복직!!

외자기업 투쟁 30년만에 경남 마산에서 희망을 썼다.
마지막 16명만 남아 투쟁하다 복직되었지만 우리는 승리 했다고 단언한다.
희망이라는 것은 원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희망을 꿈꾸고 함께 투쟁하며 만들어 갈 때 희망이라는 것은 우리의 것이 된다.
지금도 전국에서 피맺힌 가슴으로 투쟁하는 많은 동지들에게 우리의 승리가 하나의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희망들을 만들어 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나 하나의 희망을 만들어 가는 투사들에게 건투를 보낸다.
전체 0

전체 206
번호 썸네일 제목 작성일 추천 조회
공지사항
[여는 생각] [115호]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이후를 생각한다
mklabor | 2021.01.12 | 추천 0 | 조회 37
2021.01.12 0 37
16
[일터에서 온 편지] [115호]이주민의 노동기본권을 읽었어요
mklabor | 2021.01.12 | 추천 0 | 조회 14
2021.01.12 0 14
15
[일터에서 온 편지] [114호]전염병의 원인은 미스테리가 아니다
mklabor | 2020.08.27 | 추천 0 | 조회 157
2020.08.27 0 157
14
[일터에서 온 편지] [113호]동료들과 웃으면서 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mklabor | 2020.05.22 | 추천 0 | 조회 176
2020.05.22 0 176
13
[일터에서 온 편지] [112호]“나에게 한걸음 쉬어가는 소중하고 보람찬 시간”
mklabor | 2020.02.28 | 추천 1 | 조회 271
2020.02.28 1 271
12
[일터에서 온 편지] [111호]현장은 은폐, 축소, 외면
mklabor | 2019.12.06 | 추천 0 | 조회 188
2019.12.06 0 188
11
[일터에서 온 편지] [110호]뭘 해야 하지 ? 뭘 할 수 있을 까?
mklabor | 2019.09.20 | 추천 0 | 조회 401
2019.09.20 0 401
10
[일터에서 온 편지] [109호]권리의 약자와 동행하는 삶을 꿈꾸어 보고 싶습니다.
mklabor | 2019.07.05 | 추천 0 | 조회 271
2019.07.05 0 271
9
[일터에서 온 편지] [108호]커피를 너무도 좋아하던 형이 그립습니다
mklabor | 2019.04.11 | 추천 0 | 조회 269
2019.04.11 0 269
8
[일터에서 온 편지] [107호]반올림, 11년 투쟁을 이어온 사람들
mklabor | 2018.12.27 | 추천 0 | 조회 316
2018.12.27 0 316
7
[일터에서 온 편지] [106호]그래한번 가보자!
mklabor | 2018.10.18 | 추천 0 | 조회 263
2018.10.18 0 263
6
[일터에서 온 편지] [105호]끊임없는 노조파괴인권침해로 바람 잘 날 없는 유성기업
mklabor | 2018.06.20 | 추천 0 | 조회 429
2018.06.20 0 429
5
[일터에서 온 편지] [104호]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mklabor | 2018.03.27 | 추천 0 | 조회 435
2018.03.27 0 435
4
[일터에서 온 편지] [103호]“ 그게 저는 더 무서워요~!! ”
mklabor | 2018.01.02 | 추천 0 | 조회 446
2018.01.02 0 446
3
[일터에서 온 편지] [102호] 한국산연지회
mklabor | 2017.10.17 | 추천 0 | 조회 421
2017.10.17 0 421
2
[일터에서 온 편지] [101호]저희와 함께 인권밥상 차려보실래요?
mklabor | 2017.06.27 | 추천 0 | 조회 553
2017.06.27 0 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