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호]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상담실]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3-10-21 15:41
조회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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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욱  바른길 노무사 사무소  공인노무사



산재 신청했더니 불승인 받았다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에게 보통 제일 먼저 하는 말은 ‘결정문 받으셨어요?’이다. 사유가 적혀있는 결정문을 보고 불승인 사유를 알아야 심사청구든 재심사청구든 이의신청을 준비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결정문만으로 구체적인 불승인 사유를 이해하기 어려운 때가 종종 있다.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 뇌경색을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받아 요양 중이던 한 재해자는 최근 좌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이 심해져 이를 추가 상병으로 신청했는데 ‘발병 부위가 달라 기저질환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사유로 불승인 처분을 받았고, 이에 심사청구를 통해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 똑같은 사유로 기각되었다.

하지만 재해자가 심사청구를 제기한 이유는 처음 받았던 그 불승인 사유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초 뇌경색 진단 당시부터 재해자에게는 ‘양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이 60%에 이른다는 소견이 있었고 최초 요양 신청 당시에도 요양급여 신청소견서에는 신청 상병으로 우측 뇌경색이 특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발병 부위 기재 없이 그냥 ‘뇌경색’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또 최초 요양급여 신청 건이 승인되던 때에도 ‘승인 상병이 우측 뇌경색에 한한다’라는 등의 설명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재해자도 승인 상병 뇌경색 안에 좌·우측 구분 없이 최초 진단된 내용이 모두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 좌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을 재해자의 기저질환으로 본다면 같은 시점에 동시에 진단된 우측 중대뇌동맥의 협착과 그로 인해 발병한 뇌경색은 어떻게 기저질환 아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었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재해자가 제기한 심사청구의 취지는 ‘좌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은 뇌경색을 진단받을 때부터 함께 확인되었던 것인데 요양급여 신청 당시 소견서에 부위가 기재되지 않아 단순히 누락되었을 뿐이고, 발병 전 심각한 과로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인정된 사실인데 우측은 되고 좌측은 안될 이유가 무엇이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결과는 기각이었고, 기각 사유는 처음 불승인 사유와 똑같이 ‘발병 부위가 달라 기저질환인 것으로 보인다’라는 것이었다.
결국 재해자는 몇 달을 기다리고도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이해되지 않는 사유의 결정문만 한 장 더 받은 셈이다.

설명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설명을 하는 쪽과 듣는 쪽의 지식이나 정보의 차이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재해자는 의사가 아니다. 좌측과 우측이 뭔지는 알지만 중대뇌동맥이라는 것이 몇 가지로 얼마나 세세하게 구분될 수 있는지는 모른다.
혈관이 막혔는지 잘 뚫려있는지를 MRI로 검사했다는 것은 알지만 MRI를 판독할 수는 없다. 그러니 처음 진단 시 소견서에 명시돼 있던 양측 중대뇌동맥의 협착과 추가 상병으로 신청된 좌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를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으면 이를 이해할 방도가 없다.
그럼에도 최근 불승인(또는 기각) 결정문을 살펴보면 그 사유가 짧고 단순하게 ‘기저질환인 것으로 보인다.’, ‘승인 상병과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정도의 설명에만 그치고 있어 재해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불친절한 이 결정문을 오롯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때가 많다. 물론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돼있는 사건 수를 고려하면 애초에 무한한 친절을 바라는 것이 과도한 요구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결정문에 사유 설명을 한, 두 줄만이라도 더해서 불승인 받은 재해자를 납득시킬 수 있다면 오히려 불필요하게 심사, 재심사가 접수되는 건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앞서 소개한 사건에서도 반복해서 ‘발병 부위가 달라 기저질환인 것으로 보인다’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 진단되었던 양측 중대뇌동맥의 협착과 추가 상병으로 신청된 좌측 중대뇌동맥의 협착이 어떻게 다른지와 무엇에 근거해서 기저질환으로 판단한 것인지를 설명해줬다면 재해자가 그 사유를 납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몇 달을 기다리고도 또 이해할 수 없는 한 줄, 그것도 처음 받은 불승인 사유랑 똑같은 내용으로 기각을 받은 재해자는 재심사청구를 제기하고 다시 한번 지난한 기다림과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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