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호]출퇴근 재해 ‘출근 경로의 일탈·중단’ 엄격하게 판단

[산재 판례]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2-07-27 14:37
조회
3091
[서울행정법원 2022. 4. 28. 선고 2021구합71953 판결]

김민옥 금속법률원 노무사

 

2016년 헌법재판소는 “근로자의 출퇴근 행위는 업무의 전 단계로서 업무와 밀접ㆍ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사실상 사업주가 정한 출퇴근 시각과 근무지에 기속된다. (중략) 통상의 출퇴근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여 근로자를 보호해 주는 것이 산재보험의 생활보장적 성격에 부합한다.”결정했습니다. 해당 결정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 내에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재해로 규정하는 한편 출퇴근 경로 일탈 또는 중단 시 발생한 사고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출퇴근재해로 적용한다고 했습니다.
A는 충주의 저수지 토목공사를 담당했는데, 2020.10.26. 오전 6시에 동료와 집 주변 K건설사 사무실 앞 도로에서 만나 공사현장으로 함께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동료는 오전 5시45분 쯤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A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0분 정도 지나자 K건설사 사무실에서 신음소리가 들렸고 동료가 대문을 열고 확인해 보니, A가 마당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A는 대문으로 나오려 했는데 바닥에 설치된 맨홀 뚜껑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동료는 A가 통증을 호소하자 즉시 119를 불러 병원에 이송했지만 3일 뒤 사망했습니다.
A의 배우자는 근로복지공단에 A의 사망이 출퇴근재해라며 유족급여 등을 신청했습니다. 공단은“A가 동료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K건설사 앞 도로)를 벗어나 마당(K건설사 내부)에서 사고를 당했으므로, 출근 경로의 일탈 또는 중단 중에 발생한 사고”라며, 산재신청을 불승인했습니다. 또한 공단은 “A가 마당에 들어간 목적이나 체류 시간 등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아, A의 경로 일탈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통상적인 경로를 산재보험법의 취지에 비춰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범주로 봐야 한다며, 출근 경로의 일탈 및 중단을 다음과 같이 엄격하게 판단하며 공단의 출퇴근재해 불승인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산재보험법의‘통상적인 경로’란 출퇴근을 위하여 매번 일정하게 되풀이하는 경로가 아니라, 근로자가 출퇴근을 할 당시의 구체적, 개별적 상황을 전제로 ‘사회통념상 일반인의 입장에서 출퇴근을 위하여 선택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로를 의미’한다고 전제했습니다. 또한 산재보험법이 출퇴근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까지 업무상 재해로 포함시켜 근로자를 두텁게 보호하려는 취지에 따른다면, ‘출근 경로의 일탈, 중단은 업무 또는 출근 목적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목적을 위하여 통상적인 경로를 벗어난 경우로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여기서 출근 경로의 일탈, 중단 여부를 판단할 때는, ① 통상적인 경로와 해당 근로가 선택한 경로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 ② 근로자가 중간에 경유한 장소나 시설의 용도, ③ 근로자가 그 장소나 시설에 머무른 시간 등 고려하고, “만일 근로자가 출근 목적을 위하여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통상적인 경로를 벗어난 경우라면, 당시 근로자가 개인적이 목적을 충족하려는 의도가 있더라도 출근 경로의 일탈 또는 중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A의 경우, “A가 동료와 만나기로 한 10월 하순경 새벽 시간대는 기온히 상당히 낮아 일반적 상식으로 볼 때 약속장소 근처의 실내에서 약속시간까지 기다리는 선택도 가능하며, 당시 약속장소에 영업장들은 개점하지 않은 반면 평소 A가 자유롭게 출입한 K건설사 사무실은 약속장소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대기공간으로 적당했고, 반면 사무실은 장시간 휴식을 취하기는 적합하지 않고 A의 주거지로부터 겨우 700m 떨어진 장소이므로 A가 사무실에 머문 시간이 길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출근 경로의 일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또한 법원은 A가 약속시간 이전에 개인적인 용무 해결을 위해 사무실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약속시간을 불과 5분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사무실을 나와 약속장소로 향하는 도중에 사고를 당한 점을 볼 때, 사무실에서 약속시간이 될 때까지 대기할 목적이 있었음을 부정하기도 어렵다”며, 대기시간에 발생한 사고도 A의 통상적인 경로로 보고 출퇴근재해를 인정했습니다.
출퇴근재해를 인정하는 헌법재판소 결정, 그동안 산재인정 판결들의 전제는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 보호의 필요성이라는 법의 취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도 여기에 비춰 출퇴근재해의 일탈, 중단을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그 기준을 제시하면서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범위를 출퇴근 재해의 통상적 경로로 보고, 출퇴근재해 인정 범위를 넓혔습니다. 산재보험법을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공단도 이 법의 목적과 취지에 따라 재해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이 안정될 수 있도록 법원에 앞서 산재보험의 적용범위를 확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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