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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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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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실업노동자의하루 - ‘실업’이 아닌 ‘여가시간’을 위하여

언놈이 그랬는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그래 세상에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그런데 왜 이리 일자리는 안 나는 거지? 김우중이가 대우자동차 노동자들 거리로 다 내몰고 유럽이다 미국으로 튀어버리기 전, 아마 10년도 훨씬 전에 한 말인 듯하다. 그런 김우중이가 한 그 말은 이제 지한테 ‘튈 곳도 많고 등쳐먹을 것도 아직 많다!’로 말만 바꾸어도 뜻은 똑같은 말이 되어버렸지만 할 일은 많은 것 같은데 일할 자리가 없는 나 같은 실업자는 노동예비군 축에도 못 끼고 이 드넓은 거리를 할 일없이 돌아다닐 뿐이다.
나이다 뭐다 해서 웬만한 회사에는 이력서도 못 내미는 처지에 기술이라곤 운전면허도 없는 상황이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몸으로 지탱해야 하는 일 뿐. 그러다 보니 건설현장 잡일이나 세차, 주유원, 배달, 옛날 솜씨로 할 수 있는 전단지 배포 등등. 교차로나 벼룩시장과 같은 웬만한 일간지의 구인광고 중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런 것들 밖에 없어 아예 구인광고의 앞부분은 거들떠보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런 일간지도 이제 미덥지 않다.

새벽 인력사무소에 나가 허탕치고 나면 아침 7~8시 그러고 나면 길거리 자판이 곳곳에 놓여있는 이 일간지들을 하나하나 수집해서 전날과 ‘같은 쪽’을 손어림으로 넘기는데 전날 것이나 별다를 것이 없고 분명 ‘사람 구했다’라고 한 곳이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또 나와 있다. 사람 기운 빠지기 일쑤, 그나마 들쳐보며 가졌던 기대감도 일순간 사라진다.
광고보고 물어물어 걸어걸어 찾아가면 ‘사람 다 구했다’는 말에 기운 빠지는데 구했다는 사람 또 구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광고가 두 번 세 번 아니 줄기차게 나오면 사람 돌아버리는 느낌이다.

겨울은 건설현장의 일거리가 장기간 없는 시간이다. 일이 있어도 엄동설한(嚴冬雪寒) 일하기란 혼욕이다. 인력사무소에 가보면 웃는 사람이라곤 사무소 소장정도. 다들 난로주위나 바둑판 주위에서 언제 갈지 모를 일만 기다리고 있다. 요즘은 일이 없어 보통 6시까지 사무소에 도착하면 될 것을 새벽 4시부터 나와 죽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도 일자리가 없어 돌아서는 시꺼먼 얼굴에는 쓴 웃음 뿐이다. 그렇게 돌아서는데 사무소 소장이 ‘내일 또 봅이시더. 내일은 일 있을런가..’하며 내뱉는 말은 왜 그리도 얄미운지. 지도 우리 일 없으면 돈 안 되는 건 마찬가지 일 텐데 그리 얄밉게 이야기를 한다.  
일을 기다리며 쓰린 속에 담배라도 물고 있으면 사람들 주고받는 이야기가 애써 듣지 않아도 들려오는 말들이 있다. 가정사며 생계, 사람 욕하는 것, 예전 자신이 배를 얼마나 탔다는 경험담, 많고 많지만 요즘은 기업하는 놈들하고 정치하는 놈들 선거판 이야기에 ‘억! 억!’되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 그도 그럴 것이 텔레비전이다 신문이다 온통 그런 기사거리 밖에 없으니 당연하다 생각하며 그것 말고도 자신이 비정규직이다 실업자다 뭐다해도 정의와 평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의 주체인데...’라는 생각이 그런 소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생각도 가져본다.

인력사무소 일이 없어 일간지 뒤진 결과 몇 군데 메모를 하고 전화해서 찾아가본다. 그 동안 차로 다니던 곳을 걸어 다니다 보면 어디가 어디고 어떻게 가면 어떤 장소가 나온다는 것은 대충 알게 된다. 그럴 때면 ‘창원 참 좁다’라는 생각도 쓴 웃음 지으며 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일자리를 찾아가는 길에 많은 생각과 상상들이 머리에 맴돈다.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안 되면 또 어쩌지 하는 생각, 기대감이 일단 앞선다. 하지만 도착한 장소에 서는 순간, 긴장한 나머지 그 자리에 잠시 멈칫한다. 찾아오며 가졌던 희비는 다 사라진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은 앵무새처럼 이야기 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한번은 세차할 사람을 구한다기에 지금 거처하고 있는 곳과 거리도 괜찮고 또 세차하면 경력은 없어도 무엇보다 자신 있어 설 전에 찾아가니 설 이후에 오라고 해서 다시 찾아갔다. 오전에 가보니 일이 너무 바빠 오후 늦게 오란다. 그래서 남는 시간에 다른데 알아보고 다시 5시에 맞춰 세차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여전히 바쁜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무 대꾸 않고 2~30분을 세차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특별히 경력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지막 차인 듯 세차를 마치더니 이것저것 정리를 마치고 사장이라는 사람과 난 면접 비슷한 것을 보았다. 이런 순간 내가 앵무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딜 가나 똑같은 질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학생이가? 몇 살이고? 이 일 해봤나? 힘들 텐데? 월급도 얼마 안 되고! 면허증 있나?’ 대부분 ‘안 된다’라는 애초의 생각에서 나오는 질문들이다. 그래도 난 할 수 있다고 해도 거기에서 더 이상 질문은 없다. 그리고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하며 어색한 인사를 뒤로 하고 자리를 나온다.

허탕치고 거리로 나와 또 일간지를 뒤져 나와 있는 일자리를 알아본다. 허탕친 마당에 찾아갈 마음도 안 생기면 가진 동전 털어놓고 전화를 한다. 그도 안 되면 걷는다. 일정한 목적지 없이. 그 시간은 ‘사람 구했는데요!, ‘뭐, 뭐 때문에 안 되겠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나 허무함보다 더 심한 ‘소외감’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되지 하는 막막함. 사회로부터 주변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한번은 그런 생각에 현기증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렇게 걷다보면 목적지는 없어도 매번 비슷한 코스의 길을 걷게 된다. 백화점이나 마트가 있는 거리, 시장이 있는 거리를 걷다보면 여기저기 놓여있는 일간지가 다시 눈에 밟히고 공사현장의 노동자들, 무엇인가 트럭에 물건을 싣는 사람들, 오토바이에 배달을 하는 사람들, 노점하는 사람들. 마냥 집으로 가기가 그럴 때면 서점이 있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들려 한동안 이것저것 책을 뒤진다. 추위가 덜 할 때는 공원이 좋았는데 추운 날씨에 그것도 힘들게 되어 찾는 장소란 게 그런 데이다.

할 일 못찾아 거리를 오가며 보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짧게나마 하는 버릇 아닌 버릇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유형, 일하는 조건 등에 대한 생각이다. 사람마다의 표정과 하는 행동, 일하는 형태와 조건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한 개인의 모습이 아닌 이 사회의 모습으로 보인다.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돈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단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 노동이 단지 먹고사는 문제로만 비춰져서 일해서 벌고 있다는 아니 직장과 할 일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사회에 편승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 내가 지금 괴로워하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퇴색된 노동의 의미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어서 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잊고 있지 않는 것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이렇듯 사회의 개개인과 그 개인의 그룹들을 사회 밖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구조조정이라는 미명으로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과 예비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던 98년 이후 지금에 더 심각한 상황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 사실들은 요즘 언론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요즘은 TV보다는 라디오를 접할 기회가 많다. 집에 멍하니 있을 때도 그렇고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쫓아다닐 때도 그렇다. 그런 라디오를 통해 귀가 아프도록 듣는 것이라곤 당연 정치하는 놈들 ‘선거자금 문제와 4월 총선’이다. 그런데 요근래 부각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니, ‘청년실업’이니, ‘대기업노동자 임금동결’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뉴스를 들으면 한숨이 절로 난다. ‘80:20의 사회’가 누구의 이야기대로 ‘95:5의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나의 지금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뉴스를 자세히 듣게 된다. 비정규직도 마다않는다는 대졸 예비노동자들의 인터뷰가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한다.
비정규직 노동정책을 없애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염원과 현실 실업문제가 이렇게 차이를 보이는구나하는 생각에 하루라도 일을 해 봤으면 하는 마음은 쓰리기만 하다. 그리고 그런 실업대란 속에 정부에서는 3년간 신규고용 1인당 100만원의 세금면제를 기업에 제공한다는 소식은 염장을 지른다. 그런 정책들이 누굴 위한 것인지 경총 같은 데서는 ‘얼씨구나 좋다’할 일이지 뭐 우리 하곤 상관이나 있는 일인가?
연월차도 없고 잔업특근에 노동강도는 또 어쩌고. 이것이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처한 현실인데, 근본적인 문제해결보다는 겉치레로 그것도 있는 놈들 위한 정책을 은근 슬쩍 만들어내고 있다. 노동이란 것이 먹고 사는 문제로만 전락하는 경쟁의 장으로 노동현장이 바뀌는 것이 정말 어처구니 없어 보인다.

일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사회적 소외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려 그리고 생계문제 때문에 자살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노동현장에서 떳떳하게 일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가려는 순박한 소망은 거리로 내몰려 오늘도 처참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건설현장의 하루 일도 못 구해 일간지를 줍다시피 해야 하는 처지, 그도 없어 도심의 곳곳을 헤매야 하는 노동예비군들.
일을 나갔다가 인력사무소에서 대기할 때 한 분이 한 말이 생각난다. ‘보름 노는 것은 기본이지 뭐, 그나마 그 중 하루 일하면 그건 보너스고’하는 말이. 하지만 우리의 바램은 보름 중 이틀이라도 쉬고 나머지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보장되었으면 한다.
단지 벌어먹기 위한 노동이 아닌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와 함께 하는 노동. 실업이 노동예비군으로의 역할이 아닌 쉬는 시간으로 여가시간이 되고 그럼으로 인해 보다 많은 사람이 일을 하며 함께 한다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또 내일을 기다려보며 옛날 언놈이 한 말 중에 “게으를 수 있는 권리”란 말을 새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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