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호]사고목격 노동자의 고통스러운 시간

[상담실]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17-10-17 14:37
조회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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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명 (심심통통)


5월 1일 노동절.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았을지 모르겠다. 노동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치는 현장에서 1600여명의 노동자가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사람들의 죽음과 부상을 가까이서, 멀리서 목격했다. 대부분 하청노동자들이었다. 안도감, 죄책감, 앞으로 자신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두려움이 혼란스럽게 섞인 감정들을 경험했다.

사고현장에서 몸을 떨다가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서 감기몸살인줄로만 알고 병원에 가서 감기약 처방을 받았지만, 먹고도 나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아픈 것을 경험하고서 이 증상이 감기몸살이 아님을 깨달았다는 노동자가 있다.
두어달 동안 별것 아닌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고, 크레인만 쳐다봐도 사고 생각이 나면서 머리가 아프고 몸에서 열이 났다고 했다. 몇 주 뒤에 부산에서도 크레인 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TV에서 잠깐  화면으로 보고듣기만 했는데도 무섭더라고 했다. 그래서 조선소 일을 30년 넘게 했는데도 이제는 조선소 일을 못하겠어서 다른 데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3개월이 더 지난 시점에서 ‘지금은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날 이야기를 하니까 머리가 또 아프다고도 하였다.

몸으로 기억하고, 말문을 막는 트라우마
심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누구라도 재해, 전쟁, 고문, 교통사고,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해고 등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을 겪거나 목격하게 되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람의 몸은 그순간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만 전력을 다한다. 두 번 다시 같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비슷한 단서가 보이면 도망가도록 공포 감정만을 뚜렷하게 기억시키는 것이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전시 체제로 바뀌기 때문에 몸 외부의 정보를 평상시와 똑같이 입력하지 못한다. 일상의 일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시간 순서대로 뇌에 저장했다가 언제라도 편안하게 꺼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대부분의 기억이 감정적 기억으로만 저장되어서 나중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거나 회피 반응을 보이게 된다.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뇌 부위가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 부위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반복하므로 과거의 상황을 마치 현재인것처럼 이해한다. 그리고, 진짜 현재에는 집중하지 못한다. 몸으로는 기억하고 재생되지만, 이성과 말문은 막는 트라우마가 이렇게 과거의 공포로 현재와 미래를 집어삼킨다.
트라우마를 치유할 때 심한 증상들은 약물치료로 완화시키면서,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에서 감정적 기억을 언어로 표현하다보면, 언어를 통해 이성의 뇌와 소통하면서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던 감정기억을 재구성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상황과 자신이 이해되고, 강렬했던 감정이 완화되고 편안해진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대표 증상
‘삼성중공업 크레인사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대책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통해 만났던 노동자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주요증상인 재경험 / 회피 / 과각성을 경험하고 있었다.

재경험이란, 외상사건을 재연장면처럼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체험하는 느낌이다. 비슷한 단서만 보아도 고통스러운 기억이 자꾸 나고, 악몽을 꾸기도 하고, 그 사건을 연상시키는 상황에서 신체 반응(두통/근육통, 소화불량/매스꺼움, 복통, 피로감, 몸의 떨림, 가슴 두근거림 등)이 사건 당시처럼 일어나기도 한다.
회피란, 부상을 입으면 부상부위를 움직이지 않거나 만지지 않는 것으로 통증을 피하고 싶은 것처럼 마음도 마찬가지 원리를 보이는 것이다. 사건 관련 중요 정보들을 아예 기억 못하기도 하고, 사건을 연상시키는 장소, 사람, 물건 등을 피하려고 하거나 무감각해진다.  감정이 멍해지기도 하고, 현재 일상생활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과각성이란, 쉽게 놀라고 화나 짜증을 잘 내고, 잠을 못자거나 예민해지는 등이다.
PTSD 증상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하나

1개월 이상 이런 증상들이 지속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는 신체 컨디션을 유지해야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을 하고,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기분을 돌보는것이 필요하다. 전문가나 신뢰하는 사람에게 사건과 관련된 기분과 생각을 나누고, 로봇이 아니기에 마음이 약해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도록 가족과 동료들도 따뜻한 지지와 관심을 보여주면 힘이 된다.

트라우마는 공동체의 문제

대개는 사건을 겪은 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충격과 혼란이 가라앉지만, 수년뒤, 몇십년 뒤에 예상치못한 계기로 증상이 뒤늦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증상과 어려움들을 해소하지 못하면, 이후에 우울, 불안, 공황장애, 알코올중독, 가정폭력, 이혼, 대인관계 문제, 사회적 기능을 못하게 되는 다른 문제들이 더 생기거나 악순환이 일어나기도 한다. 피해자였기 때문에 분명 안쓰러워야할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상처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피해자가 나중에는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문제는 그렇게 가족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 사회 문제가 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처음으로 미국 사회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의 사회부적응과 공동체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이었다.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문제도 이미 회사 울타리를 넘어 공동체의 문제, 사회 문제가 되어 버렸다. 규모가 이렇게 큰 사건이었음에도, 세월호 사건을 겪은 후였음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트라우마에 대한 대처 체계가 아직 상식이 되어있지 못했음을 확인하였다. 고용이 불안정했던 하청노동자들은 퇴사한 뒤 어딘가에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노동자의 중대재해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시행정이 아닌 실질적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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