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호] 중대재해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

[초점]
작성자
mklabor
작성일
2022-11-04 13:49
조회
2615

김태형 변호사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의 입법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수 십 년 간 매일 평균 5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해 온 현실에 대한 전 국민적인 관심과 공감대가 이를 가능케 하였다. 물론 이 관심과 공감대의 바탕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그 유족과 가족들의 피눈물이 있었다.
그런데 이 법이 부분적으로나마 시행된 지 이제 막 1년 여 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 일각에서는 이 법이 ‘실패했다’고 한다. 이미 이 법의 목적과 취지를 뒤틀어 버리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 되었으며,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 대놓고 이 법을 고쳐야한다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이들의 주된 주장은 중대재해법이 형사처벌 규정으로서 불명확하고 책임주의의 원칙에 반하며, 또한 실제 산업재해 예방에 아무런 실효적 효과를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이 시행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가 크게 감소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막 시행되었고 그 적용범위 조차 유예규정으로 인하여 협소할 뿐 아니라 아직까지 공소 제기 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면에서 지나친 속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러한 주장의 저의는 결국 중대재해법의 적용 범위와 의무 내용을 축소하여 기업과 자본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고, 동시에 현재의 잔혹하고 처참한 산업재해 현실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중대재해법이 법률 그 자체로서 매우 뛰어나게, 아름답게 만든 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법이 다소 거칠고 문제의 소지가 있다 하여 곧바로 위헌이라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명확성 원칙의 관점에서의 비판은, 수범자의 관점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중대재해법의 입법이 유려하지 못하다는 객관적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모든 형벌 조항이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의무의 내용을 규정할 수도 없거니와 반드시 그렇게 해야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중대재해법이 아무리 형벌을 규정하는 법이라고 해도 정책적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측면 또한 없지 아니하며 따라서 일종의 행정형벌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행정형벌의 경우 어느 정도의 추상성은 필연적이고 오히려 필수적이기도 하다. 예컨대 산업안전보건법 제38조의 안전조치에 관한 규정에 있어서, 실제 산업현장에서 사업주가 지키고 갖추어야 하는 구체적인 사항들은 부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따라서 산업현장의 상황이 기술의 발전 등으로 변화되는 경우 위 규칙으로서 그 내용을 반영할 수 있다. 동시에 수범자인 사업주로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추상적인 법률 규정만으로도 자신의 의무사항이 무엇이며 이를 위반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 결과 처벌을 받는다는 점을 충분히 예견하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도 이와 달리 볼 아무런 이유가 없음은 물론이다.

책임주의에 관한 비판은 주로 중대재해법 제2조 제9호의 경영책임자의 의미와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 규정은 중대재해법의 핵심적인 요소라 할 수 있으며, 동전의 양면과 같이 이 법의 개악을 요구하는 자들의 주된 목적 또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법의 핵심적인 입법목적 중 하나는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하여 이윤을 가지고 가는 부의 귀속 주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법적 책임의 귀속 주체를 일치시키고자 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위 제2조 제9호의 경영책임자 규정의 의미는 매우 크다. 특히 법리적인 한계를 입법을 통해 극복한다는 면과, 실제 중대재해법 이전에는 이윤의 귀속 주체는 입건조차 하지 아니하였던 어처구니없는 현실의 면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
특히 재계의 입장에서는 바로 그들 자신, 즉 재벌과 대기업의 총수, 경영자, 오너 등 기형적인 기업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책임은 지지 아니하고 오직 과실만을 항유해온 자들이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일면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이 제2조 제9호의 규정을 무력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중대재해법 제2조 제9호의 ‘또는'의 규정의 의미를 ‘선택적인 처벌을 규정한 것'이라는 비상식적인 해석론을 펼쳐오기도 하였다.
요컨대 이 규정에 대한 개악은 곧 중처법의 입법 목적과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법 제2조 제9호 ‘경영책임자등'의 규정 또한 비록 ‘미려’하지는 못할지라도 합리적인 해석론이 이미 충분히 자리를 잡고 있는 모양새이다. 즉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a)'과 ‘이에 준하여 사업을 대표하고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b)'이 각 독립된 의무 주체로서 개별적으로 중대재해법 제4조, 제5조의 의무의 수범자이며, 처벌 적격자이다. 요컨대‘경영책임자등'에 해당하는지는 사업을 대표하는지와 안전 보건 업무에 관한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할 수 있다. 전자의 것은 이미 확고하고 명확한 해석과 적용이 가능한 부분이다. 안전, 보건 업무에 관한‘실질적인 권한의 유무’는 사실인정의 문제인바, 예컨대 실소유주의 처벌을 면하기 위한 단순히 형식적인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를 선임하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경영자의 책임이 면해질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중대재해법의 제 규정은 현행의 모습 그대로라 하더라도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책임주의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해석과 적용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가 법제처에 대해 이른바‘지원 요청'을 했다는 기사가 보도 되었다. 고용노동부가 ‘시행령에 위 경영책임자에 대한 구체적 해석을 담아도 되는지 문의'를 하였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어떤 해명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의 해석이 위와 같이 가능한 경우임에도 굳이 법제처에 시행령을 통한 개정 가능성을 문의 한 의도와 목적은 무엇인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기업재정부에서 중대재해법 관련 별도의 용역을 시행하고 개정 방안을 마련해 고용노동부에 전달했다고도 한다. 언론에서 조차 이러한 상황이 ‘소관부처에 대한 월권적 행위’라는 지적이 있었음에도 고용노동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하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속된 말로 ‘쪽 팔리는 일'이다. 고용노동부의 핵심 임무 중 하나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조성하는 것'이며 노동자의 안전, 보건의 문제에 있어서 소관, 주무 부처이나 사실상 이미 그 임무를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공은 이제 다시, 중대재해법의 입법이 이루어지기 직전과 같이 시민, 노동사회로 다시 넘어오게 되었다. 수 십 년의 운동을 통해 간신히 마련한 시금석이자 주춧돌인 중대재해법이다. 이를 여기서 지켜내지 못한다면, 작금의 산업재해의 현실은 결코 바뀌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중대재해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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