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싸움끝 승리 - 퇴근 중 재해 인정사례
산추련 회지모임
비록 우리 혜영이는 갔지만,
이번 판결로 더 많은 사람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헛된 죽음은 아닐 것입니다.
-2004년 10월 30일 새벽 0시8분, 차량을 운전하여 퇴근하던 중에 전신주를 받고 숨진지 4년만에 산재인정을 받은 하혜영씨-
출근중에 사고를 당하거나 퇴근중에 재해를 입게 되는 일은 흔한 일이다. 재해를 당하면 너무도 당연하게 산재를 생각하게 된다.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 출근을 하는 것이고, 또 일을 마쳤기 때문에 퇴근하는 것이니 당연히 업무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은 무참히 짓밟힌다. 공무원은 출퇴근 중 재해를 당해도 공무상재해로 인정받고 있으나, 노동자들에게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내세우며 출퇴근 재해까지 산재처리를 해주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출퇴근중 재해를 당하고도 보상은 커녕 치료비조차 스스로 부담하다가 결국은 회사까지 그만두어야 하는 불행을 맞이했다. 출근길에 빙판도로 사고로 숨지는 사람도 있고, 야근을 마치고 피곤하여 졸음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겪기도 하였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노동자의 이야기, 너무나 일찍 가버린 짧은 인생
지난 2008년 11월 7일 사고가 난지 4년만에 산재인정을 받게 된 하혜영씨의 사례는 제한적이긴 하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밤늦은 퇴근길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산재보험에 의해 유족보상 및 장의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확정되었다.
하혜영씨는 1996년 여고3학년에 다니던 중 아버지를 잃고,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하여 마산 자유무역지역의 전자제품 공장에서 일을 했다. 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하여 야간대학에 진학하려고 했으나, 회사에서 야근을 하지 않으려면 그만두라고 하여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녀는 비록 직장생활을 더 이상 하지 못했지만 장학생으로 합격하여 학비를 내지 않고도 대학을 다닐 수 있게 되었으며, 2004년 2월에 수석으로 졸업도 하였다.그렇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은 그녀가 학교를 다니면서도 백화점 판매사원, 문서번역, 레스토랑 서빙등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힘들게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창원의 한 중견 제조업체에 비정규 계약직으로 취업을 하였으나 커피를 나르거나 사무보조를 하는 일을 시켜 자신의 창의력과 열정을 발휘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사직하고, 10월 10일 창원의 유통회사 파비뉴21에 취업을 하였다.
파비뉴21은 지역문화를 새롭게 주도하기 위해 인재가 필요하다는 등 과대광고로 사원모집을 하였고, 하혜영씨는 10월 29일부터 출근하여 휴일도 없이 일을하였다. 심지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출근하여 밤11시가 넘어서야 퇴근하였다.
2008년 10월 28일 회사 개업식을 하였고, 29일에는 퇴근 후에 개업식을 무사히 마쳤다며 회사 부근 고깃집에서 회식을 가졌다. 하혜영씨는 회식에 참여했으나 술을 못마시는데다, 남은 일이 많아 술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은 채 밤10시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른 직원 3명과 함께 밤11시30분까지 남은 업무를 모두 마치고 통상 그랬던대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여 퇴근길에 나섰다.
사고 시간은 38분 뒤인 0시8분, 장소는 창원시 천선동 성수원 부근에서 안민터널 방향으로 가는 도로에서 였다. 차량은 인도를 넘어 전신주를 들이 받았고, 그녀는 장파열에 따른 과다출혈로 끝내 소생하지 못한 채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밤늦은 퇴근길에 발생한 사고는 산재보험 적용대상
사고가 난 후 시신은 화장되어 진해 명동의 바닷물에 한 줌 재로 뿌려졌다. 회사는 화장을 하기 전 영안실에서 모든 것을 잘 해 주겠다고 다짐하듯이 말했으나, 화장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유가족들을 피하며 따돌리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회사를 찾아가면 사장이 없으니 다음에 오라는 말만 반복했을 뿐이다. 당시 가족들이 회사로부터 받은 것은 20일간의 월급 100여만원이었고, 장례비조차 지급받지 못했다.
더 이상 회사의 태도를 믿을 수 없게된 유가족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찾았는데, 근로복지공단은 판례를 보여주며 교통사고는 퇴근중 재해이므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했다.
하혜영씨의 어머니는 딸이 죽은 후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야 했고, 끝내 2008년 5월부터 목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후두암이라는 판정까지 받아 항암치료 중에 있다.
온 가족을 슬픔의 구렁으로 몰아 넣은 이 사고로 혜영씨의 어머니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을 신청했지만 불승인 받았고, 창원지방법원에서 1심을 패소하여 부산고등법원에 항소하였지만 이 역시 패소하고 말았다.
이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대법원에 상고를 하게 되었는데, 2008년 9월 24일 대법원에서 “만26세의 미혼 여성이던 망인이 사고 당시 회사의 긴요한 업무상 필요 때문에 심야까지 근무를 계속한 후, 택시나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어려웠던 까닭에 시외에 위치한 자택으로 퇴근하기 위해서는 잦은 야간근무에 대비한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를 이용한 퇴근 이외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여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다시 부산고등법원으로 환송되어 부산고등법원이 2008년 11월 7일 최종적으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혜영씨는 떠나갔고 비록 판결은 제한적인 범위에서 산재를 인정하고 있지만 회사 밖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하여 내몰라라 하는 사업주의 태도와 근로복지공단의 반노동자적 태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사건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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