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산재보상보험법이 바뀌었다. 산재법은 노동자가 업무상 사유로 인해 발생한 부상, 질병, 사망에 대하여 과실 여부와 상관없이 보장하도록 되어 있는 법이다.
이때 업무상 재해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이 지금까지 있어왔다.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였는데 실질적인 손해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부분의 입장과 공공보험으로서 생활에 대한 보장적 측면을 강조하는 입장이었다. 전자의 경우 사업주의 지배 영역 내에서 발생하는 상병에 대한 보호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보상의 범위가 좁지만 후자의 입장에 서면 생활보호적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보상의 범위가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대립되는 과정에서 산재법이 바뀌었고, 법원의 판단도 생활보장적 측면의 성격이 강조되어 오던중 손해배상적 측면으로 입장이 바뀌고 있다.
즉, 이는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복지의 축소와 병든 노동자에 대한 폐기에 대한 문제, 특히 노동강도의 강화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구조속에서 산재 발생의 위험과 근골격계와 뇌심혈관계 질환의 증가로 나타나고 있는 상태에서 기업주의 부담을 어떻게 줄여 줄 것이냐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왔고 그것에 대한 일환으로 산재법의 보장성 축소라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를 위해 산재법은 업무 관련성 질병 즉, 근골격계 질환이나 뇌심혈관계 질환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정하고 이 기준에 통과되지 않으면 산재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게 된 것이다.
이를 충실하게 집행하는 기관이 근로복지공단이며 이를 보다 합리적으로 산재 불승인 시키기 위해서 업무상 질병 판정 지침과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를 두는 것이다.
2.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
먼저 산재법에는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이하 '판정 위원회')란 것이 있다. 판정 위원회는 뇌심혈관계, 근골격계 질환 등 업무 관련성 질환에 대해서 판정을 하는 곳이다. 판정 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서 근로복지공단은 다양한 전문가들을 초빙하였다고 한다.
변호사, 노무사, 의사 등등.
현재 서울을 포함하여 각 지역본부 220여명에 가까운 전문가들로 구성된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판정 위원회가 생기게 된 이유를 근로복지공단은 각 지사 마다 업무 관련성 질환에 대한 판정 기준이 틀리기 때문에 다양한 민원이 제기 되었고 이를 합리하기 위해서 근로복지공단 지역본부에 판정 위원회를 구성 설치하여 합리적으로 업무 관련성 여부를 따지겠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합리적이고 타당한 듯이 보일 수 있으나 이를 달리 해석하면 합리적으로 산재 불승인 시키겠다는 것이며, 산재노동자들은 산재 인정 안되었다고 떼 쓰지 말라 말이다.
사실 사회보험으로서의 산재보험에 이런 판정위원회를 두는 것은 부적절하다. 즉, 근로복지공단이 사회보험으로서 산재 보험을 운영을 하려고 하였으면 산재노동자의 보호에 더욱 중점을 두고 운영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며, 판정위원회 보다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제 3의 기관에서 업무상 질병 여부에 대해서 판정을 할 수 있도록 하였을 것이다.
결국 산재노동자의 보호보다는 산재 보험 재정 안정화에 역점을 두다 보니 업무 관련성 질환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만들고 치료 제한을 가하는 각종 조치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근골격계 뇌심혈관계 업무상 인정 판정 지침(안)을 살펴보면 그러한 입장들을 명확히 확인 할 수 있다.
3. 근골 뇌심혈관계 인정 기준을 통해서 살펴보는 업무상 질병 판정 문제
근골격계 뇌심혈관계 질환은 작업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환경에 그 원인이 있으며, 이는 노동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즉, 비인간적인 작업환경과 노동강도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며, 이는 경제 성장우선 정책에 따른 높은 노동강도,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그리고 열악한 작업환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질환의 경우 지금까지는 개인적 고통과 부담으로 끝났지만 최근 10년 사이 건강권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격화 되면서 법적 테두리 내에서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의 요구에 따라 산재법을 바꾸면서 다시 개인적 고통과 부담으로 지우게 하고 있다. 특히 근골 질환 등 누적성 질환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멈출 때 자본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열악한 작업환경에 노동자들을 내 몰게 되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을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는 이번에 제출된 지침인 근골격계와 뇌심혈관계의 인정 기준을 보면 업무 수행성 보다는 업무 기인성에 그 초점을 두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업무 수행 여부는 근로 관계에 의해 사업주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 기반으로 하고, 업무 기인성은 재해와 손해와의 인과관계 여부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업무 기인성을 찾는 것은 사실상 기업에 내재된 위험성에 그 초점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신체 부담 작업을 하였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여부가 그 핵심이 된다.
여기서 그 입증을 위하여 산재노동자가 겪게 되는 고통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되는데, 첫째 발생된 질병이 업무와 관련이 있는 질병인지를 밝혀야 하고, 두 번째로 그 업무가 그러한 질병은 발생시켰는지를 밝히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즉, 근골격계 질환 자체를 퇴행성 변화의 일부로 전제한 뒤 업무 수행 중 사고로 인한 외상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외상으로 인해 발생한 질병인지를 의학적으로 밝히지 못한다면 산재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업무 수행 중 넘어져 허리를 다쳐 '요추 추간판 탈출증'이란 진단을 받는 경우 업무 수행 중이라 하더라도 사고로 인해 발생되었다는 뚜렷한 진단이 있거나, 그동안 신체 부담 작업을 하였다고 명백하게 밝히지 못한다면 이는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적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 하고 있는가. 이 역시 매우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즉, 신체 부담 작업이란 기준이다. 신체 부담 작업에 해당하지 않으면 같은 업무를 20-30년 하였다고 하더라도 산재로 승인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누적성이란 것은 장단기적인 고려가 있어야 하며, 이는 단순하게 인간공학적 요인 뿐 아니라 노동환경 전반 요인을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주요하게 다루는 것은 인간공학적으로 얼마나 부적절한 자세와 중량물을 취급하고 있는가가 주요하게 제기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뇌심혈관계 질환 인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실상 의학적으로 딱 잘라 이것은 산재로 인한 '뇌출혈'이고 이것은 개인적 원인으로 인한 '뇌출혈'이라고 라고 단정할 수 있는 의사는 아무도 없다. 즉, 인간의 '뇌' 또는 '심장'을 해부한다고 해서 업무상 요인이 몇 %, 개인적 요인이 몇 % 이렇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근로복지공단은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기준을 정하게 된다. 이는 노동과정에서 발병할 수 있는 건강 이상의 문제를 사실상 배제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 쉬운 예가 만성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 단기적으로 급격한 업무의 증가, 만성적 과중한 업무(발병일 3개월 근무력)라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역시 수년 또는 수십년간 누적된 스트레스나 과로에 대한 평가는 전무 한 것이다.
특히 과로에 대한 규정은 사실상 개인의 신체적 특성을 무시하고 있으며 즉, 남자와 여자, 젊은 노동자와 나이든 노동자, 기초 질환이 있는자와 없는자등 각각의 신체적 특성을 무시하고 일방적 규정을 제시하고 있다.
4. 결론을 대신하며..
업무상 질병 판정 지침은 수년 또는 수십년간을 노동자로 살아가고 그로 인해 발병하는 노동자 건강권 파괴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즉, 수십년간 업무 수행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엄격하게 제한된 업무 기인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산재법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보장이 축소된 것이다. 또한 재해 조사를 담당하게 될 근로복지공단의 주관적인 판단은 매우 크게 될 것이며, 업무상질병인정기준위원회 역시 몇가지 기준에 끼워맞추기식 판단을 하는 형식기구가 될 것이다. 그들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의 주관적인 재해 조사에 근거한 자료와 회사 자료 그리고 재해자의 자료 밖에 없다. 재해자의 노동현장을 방문하여 그 노동자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기계적으로 허리 숙임이 얼마나 있는지 여부만 판단 할 것이다. 모든 것을 계량화 시켜 놓고 판단 할 것이다.
사실상 산재노동자의 보호적 측면에서 기준을 제시한다면 질병의 발병, 악화, 노동조건, 작업환경 및 방법 등 개인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하여 근로 관계상의 위험의 발현으로서의 성격이 인정되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지만 정부나 자본 그리고 이를 대행하는 근로복지공단은 철저하게 손해배상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노동자 건강권 개념을 축소하려고만 할 것이다.
이번 업무상 질병 판정 위원회와 지침은 많은 논란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그 논란 속에 억울한 산재노동자들이 계속 발생되는 것이 문제란 것이다.
이를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은 선보장 후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평가 역시 산재노동자의 보호를 위해서라는 생활보장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며, 평가 기관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독립되고, 노동자의 참여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제3의 기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