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죽는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아이구
자살사망, 산재사망과 많이 닮았다
참으로 기막힌 세상살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거의 매일 무심하게 전한다. 새로운 소식 뉴스로 말이다. 세상사는 이들 대부분이 내일 아닌 듯 무심하게 사람 죽는 소식을 접한다. 자신이랑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이들의 죽음에 가족과 이웃들에게 부고를 하고 상을 치루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어떤 이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거나 간혹 관심이 가는 죽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하다 곧 잊곤 하는 것조차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로 사람 사는 꼴이 참 서글프다.
사회적 타살인 자살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는 산재사망과 일맥상통한다. 타살임에도 불구하고, 개인부주의니 심성이 어떻느니 하며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 닮았다. 일터에서 일하다 죽은 동료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노동자들은 어떤가. 부조금을 내고 초상집에 가서 죽음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으로 족할까.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고 책임을 묻고, 죽은 이들이 죽기 전보다 그 가족들이 더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보상과 사회적 제도를 만들면서, 더 이상 같은 이유로 죽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노동자장례투쟁을 올곧게 해야 한다고 하면 너무 현실을 모르는 이의 허황된 주장이려나. 자살하는 이들이 죽음을 통해 세상과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에 가슴을 열고 온몸으로 답을 찾으려는 모습이야말로 온전한 추모와 깨어있는 사람처럼 사는 것 아닐까. 자살사망도 산재사망처럼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현실적 고통이자, 산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퍽퍽한 세상사 사람을 잡는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넋두리하듯이 세상살이가 참으로 퍽퍽하다. 권력과 자본의 불의에 맞선 분실자살,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 가난과 부채로 인한 서민들의 자살, 청소년과 학생들의 자살, 전의경과 군인들의 자살, 연예인 자살, 비리관련 공직자의 자살, 전직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현대아산 정몽준 회장의 자살 등 죽음을 택하는 이들은 일상을 이러저러한 삶터에서 살았던 이들이다.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는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세상살이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어렵고 힘들게 하고 있는 현실이 매순간 이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상은 요지경이고 기운이 꽉 막혔다. 사람보다는 명예, 직위, 학력, 지연, 권력, 돈 등이 우선인 요지경 세상인지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권리와 관계를 실현하려는 기운은 이러저러하게 꽁꽁 막히고 묶어있다.
그래서 세상 꼴이 뒤틀려있다.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세상이다. 대한민국에서 자살은 사망원인중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에 이어 4번째로 높다. 2007년에는 10만명당 24.8명이 자살로 사망해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 제일 높았다. 2009년에는 2008년보다 19.3%가 증가하여 10만명당 31.0명꼴인 15,413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하루 평균 자살사망자가 42명을 넘고, OECD 국가 자살사망 통계가 가장 높고 전체 평균의 3배에 이른다. 때문에 자살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이 허튼 소리는 아니다. 통계를 통해 끔직한 세상사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자살사망은 IMF 이후 급격하게 증가했다. 소위 경제위기를 경과하면서,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의 삶은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자본의 위기를 전체 사회구성원 특히 노동자 서민에게 전가했던 산 증표로 자살사망을 보듬는 것이 중요하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제도적,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대응은 거의 없다시피 하거나 언 발에 오줌누는 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재해로 사망하는 이들처럼 자살사망자 역시 같은 처지임을 어느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자살을 방조하거나 조장하는 세상으로 인해 자살한 이들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도 안타까운 일상의 범벅이었음을.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는 세상사가 사람들을 잡고 있다는 것을.
호들갑을 떠는 이들의 꼬라지
DJ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 경제수석실에 합류해 개혁에 깊게 관여했던 한 금융전문가는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이렇게 분석했다.
“청와대에서 조사해보니, 실업자가 되면 처음에는 퇴직금과 명예금, 그리고 얼마 되지 않은 돈으로 생활을 합디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음에 집에 손을 댑니다. 집을 팔아 전세로 옮기고 그 다음에는 전세를 월세로 옮긴 뒤 남은 돈으로 생활을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다가 더 이상 돈을 만들 길이 없으면 거리로 나앉아 노숙자가 되거나 자살을 하곤 했어요. 공황 발발에 따른 자살은 사회적 타살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란을 떠는 이들은 헛 다리만 잡고 있으니, 참으로 갑갑하기 이를 데 없어 세상사 돌아가는 꼴을 확실하게 바꿔야지 싶다는 마음을 다져 본다.
전문가입네 하는 이들은 자살관련 연구보고를 인용하며 100명중 3명은 생애 주기 동안 한번은 자살시도를 하며, 자살시도자의 60%이상이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갖고 있으니 치료와 예방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득불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이니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자고 한다. 줄이는 게 아니라 없애자고 하면 자본 중심의 세상 꼬라지에 맞서야 하니 그런건가.
어떤 종교인들은 생명 중심의 윤리 도덕적 가치보다는 과도한 경쟁, 경제적 이익, 물질만능주의를 중시하는 가치관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윤리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사는 문제임을 이윤중심의 가치관을 조장하는 세상 꼬라지의 문제임을 직면하는 것이 필요하지 싶다. 간혹 부도덕한 행위로 또는 범죄시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마음먹기 달렸고 극히 개인문제로 치부하는 듯해서, 종교에 귀의하면 된다는 투의 이야기라 거슬리는 것은 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길.
국회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법을 통과시켜 입법화 했다. 어떤 도지사는 자살방지 대책팀을 꾸렸다. 예방교육을 철저히 하고, 법을 만들고, 사회구성원들이 마음을 건전하게 하면 된다고 설레발이다. 이런 헛짓꺼리로 호들갑을 떠는 이야기를 모아 언론이 종합대책이랍시고 둔갑시켜 사회구성원 개개인들에게 떠넘기는 역할을 하고 나면 대책은 마무리?
글쎄...
사회적 타살인 자살 막을 수는 없을까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을 수 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자살을 택하는 이들에게는 각각 구체적인 절망과 고통이 있다.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도 절망과 고통은 예외가 아니다. 사회구성원들조차 사회적 인식과 제도 및 시스템이 엉망인 세상에서 절망과 고통에 온전하게 직면하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하는데 여전히 줄을 서고 있으니 자살을 줄이거나 없애려는 것은 부질없을 지도 모르는 형국이다.
사회적 타살인 자살은 자본 중심의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구조적 질서로 인한 것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지 싶다. 희망을 누르고 빼앗아 생기는 구체적인 절망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나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몸과 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자 해법으로 삼는 것은 어떨까.
민주주의에 대한 왜곡과 탄압, 사회 공공적 권리의 침해, 임노동에 대한 착취, 정치권리 배제, 인권과 노동기본권에 대한 제한과 억압, 실업과 해고, 집 없는 설움과 부담, 빚과 가난, 소위 일류를 향한 성적과 자격증 등과 같은 수없는 스펙 쌓기, 물가고, 사교육비, 보건의료비, 소수자들의 어려움, 가부장적인 문화, 성폭력, 장애 등 수없이 많은 고통을 보듬는 것이 필요하다. 이윤보다 사람과 환경이 우선하는 세상을 꿈꾸고 만들어 가는 힘이야말로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터와 삶터에서 함께 일상을 사는 이들의 관심과 소통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가는 공동체. 우리 스스로 내부에 어느 샌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희망을 누르고 빼앗는 모습이 있다면 그조차도 그대로 보고 바꿔가는 공동체.
그래야 자살원인 분석을 염세와 비관, 가정불화, 애정문제 등의 순으로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찾는 헛짓꺼리를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산 사람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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