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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수석부위원장이었던 강승규라는 자의 뇌물 비리를 들으며 사지가 쫙 풀어지는 것 같았다. 지난 기아차 비리, 현대차 비리 역시 상당히 큰 파문을 일으켰지만, 민주노동운동의 결집체인 민주노총의 지도부에서 터진 비리 문제는 그 어떤 문제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설움, 그보다 더 큰 허전함을 느끼며 지난 날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19살 세상물정 모르고 시작했던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쁨 속에서 제일 먼저 하고픈 일이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당신 이름으로 된 논이라도 한 마지기 사드리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좀 더 많이 돈을 모으게 되면 장사라도 해야지 하는 야무진 꿈도 꾸었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야무진(?) 꿈은 군이라는 나라의 부름에 세월을 더 보내야 했었고, 다시 복직하여 꿈을 이루어가기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했다.
세상이 참 만만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시절이었다. 열심히 잘하려고 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내세운 중간 관리자는 더 열심히 더 잘 해라고, 그리고 아무리 중요한 개인의 일이 생겨도 회사 일이 우선이니 조퇴도 안 된다, 잔업을 올려놓고 일이 생겨 일찍 나가야겠다고 사정을 하면 잔업 올린 시간만큼의 일을 다해놓고 가라는 등 무엇인지 모를 응어리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한 일들이 세상물정 모르고 희망이란 야무진 꿈을 꾸어왔던 나를 노동자임을 알게 했고, 노동자로서 다시 거듭나게 만든 일들이었다. 이후 교육과 학습을 통해 가려진 세상의 진실을 다시 배우게 되었고, 전태일 평전을 밤새 읽으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였다.
그리고 배운 것은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회사나 중간관리자들이 벌이는 탄압에 직접 맞서고 주위 동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함께 힘을 모아나가기도 하였다. 그러한 세월 속에 노동조합의 간부도 하게 되었다.
노동조합 간부를 처음 하면서 회사 관리자들과는 만나는 것조차 큰 일이 난다고 생각하며 사적으로는 절대 만나지도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었다. 심지어 교섭을 하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 것도 안 된다는 는 각오로(이빨을 보이면 그넘들이 약하게 볼까봐) 이마에 힘줄을 그어가며 앉아 있기도 하였다.
내가 배운 것은 자본은 공존하고 있지만 결코 가까워 질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의 사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동안 지도부로서 활동가로서 노동자 계급의 단결과 투쟁을 올바로 이끌어내지 못하고 자본과 정권의 의도에 따라 조합원들의 투쟁 동력을 수도 없이 꺾어 버렸던 일과 현장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합의 주의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인냥 자본과 정권이 내민 손을 덥석 잡고 오히려 같은 노동자에게 총부리를 겨냥하는 반노동자적인 작태도 보았다.
뿐만 아니라 한 노동자의 처절한 죽음 앞에 자본과 정권에 대한 분노는 접어둔 체 열사니 아니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논쟁으로서 투쟁 동력을 흩어버리며 오히려 그것을 조합원들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작태에서 더 큰 위기를 느꼈어야 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운동의 위기를 말하면서 무엇이 진짜 위기 인지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썩고 곪은 상처만 감추어 오던 방식으로는 이제 안 될 것이다. 병을 더 크게 키우지 않기 위해서는 썩고 곪은 부위는 과감하게 잘라버려야 하는 것이다. 당장 아프다고 해서 계속 둔다면 그 상처는 몸 전체로 퍼져 더 이상 치료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를 것이다.
협조주의에 빠져 반계급적인 작태조차 현실이라는 것으로 정당화시켜 버리고, 노동자 계급의 단결과 이익은 도외시하고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신들의 출세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과 같이 썩고 곪은 것들을 확실하게 잘라버려야 할 것이다.
환골탈퇴, 말로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진짜 뼈를 깎는 고통을 겪더라도 새롭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밤을 지새우며 자본을 배우며 자본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로 불태우던 그 날, 술 한잔 기울이며 노동자를 배우며 현실이 서러워서 울며 꼭 좋은 세상 바꾸자며 동지의 굳은 손 꼭 잡고 내일을 약속하던 그 날, 이제 처음 그 날로 되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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