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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년이 되었습니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라며 선포한지 말입니다.
외형상 20년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염원했던 민주노총도 만들어지고, 노동자 국회의원도 탄생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금속 산별의 시대도 열리는 것 같습니다. 이 얼마나 기대하던 일입니까? 20년 전에는 꿈도 못 꿀 그런 일들이 현실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노동자들이 슬퍼 보이기만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얼마전 ‘하중근’이란 노동자가 시위 도중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하중근’을 죽인 책임자는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또한 어찌 된 일인지 함께 투쟁해야 할 노동자들은 그 죽음에 대해서 별 다른 분노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우리의 지도부는 묵묵부답입니다. 그냥 남의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20년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위 동지가 경찰과 싸우다가 팔이 부러지고 돌아오면 다음 집회 때 다들 몰려가서 폭력 경찰을 향해 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분노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 노동자가 죽으면 모두의 죽음처럼 슬퍼했다고 합니다. 특히 거리에서 경찰에 맞아 죽으면 그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더 큰 투쟁을 벌여나갔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죽음은 한 노동자 개인의 죽음을 넘어서는 일이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노동자들은 항상 바쁩니다. 잔업/특근한다고 바쁩니다. 예전보다 돈을 많이 벌텐데도 항상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보니 잔업 한 대가리라도 더 할라고 관리자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이제 노동조합의 할 일은 조합원들 잔업/특근을 보장해 주는 일입니다. 특히 능력 있는 부서 대의원은 잔업/특근을 많이 따오는 것으로 판정합니다.
이렇게 되니 결국 노동자들은 관리자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관리자 말 한마디에 주눅이 듭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옆 동료가 다치고 병들어도 회피합니다. 관리자가 산재로 나간 동료 노동자를 욕을 하더라도 묵묵히 듣고만 있습니다. 그것을 넘어서서 서로를 욕하고 있습니다. 옆 동료가 아파서 산재로 나갔기 때문에 그 일을 자기가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산재로 나간 옆 동료를 원망합니다.
20년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록 돈이 없어도 만약 관리자가 동료 노동자를 욕하면 함께 싸웠다고 합니다. 더구나 노조를 만들면서 ‘관리자님’에서 ‘관리자’로 ‘사장님’에서 ‘사장’으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언제나 평등함을 요구했습니다. 쉬고 있는데 옆에 와서 잔소리하면 옆 동료와 난리를 쳤다고 합니다. 또한 산재가 되지 않는 옆 동료가 있으면 노동부에 가서 책상에 신발 올려서 신발끈 질끈 묶고 책상 한번 엎고 큰 소리 치고 나왔다고 합니다.
혼자 잔업/특근에 매몰되기 보다는 함께 같이 할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20년 전 노동자들은 돈이 없어도 언제나 당당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결국 이렇게 된 것은 노동자들에게서 ‘기상’이 사라져서 그렇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에게서 ‘기상’이 없어지니 결국 혼자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노동해방’ 깃발 아래 수 많은 노동자가 모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총’ 깃발아래 과연 얼마나 모일까요? 기껏해야 5만여명 밖에 모이지 않습니다.
‘노동해방’ 깃발 아래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면 지금은 비자발적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왜 ‘민주노총’ 깃발 아래 모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반문합니다.
올해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있은 지 꼭 20년째 되는 ‘해’입니다.
과연 우리의 삶은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스스로 반문해 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당시 선배 노동자가 아니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주역이었던 자신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낳은 삶을 살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87년 그 때 그 시절..
공장을 넘어 거리에서 시위를 하던 그 분들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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