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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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86호]우리 그리고 동지

이갑호 쌍용자동차지부 창원지회 지회장


2009년 5월 어느 따듯한 봄, 나는 그때까지는 누구나가 그러한 그저 평범한 삶이었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공주 2명이 태어나고, 가장으로서 그들을 위해 남들과 별반 다를게 없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었다.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사하고 15년 동안 엔진 조립만을 했다. 남들과 다를 게 없는 내 인생은 항상 봄인 줄만을 알았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그 해에 쌍차에 불어 닥친, 때 이른 매서운 바람이 나의 봄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정리해고라는 매서운 바람이 나와 가족의 그저 그런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그래서 나는 싸웠다. 모진 날들을 같은 작업장에서 함께 일한 동료였기에 어느 누구도 해고 되어서는 안 되기에 우리는 함께 싸웠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였지만, 함께 살기위해 우리는 버텼다. 그리고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그, 77일 마지막 날엔 모두가 울며 나왔다. 난생처음 경찰차를 타고 구치소로 갈 때 비가 내렸다. 옥쇄파업 77일의 기간 동안 내리지 않던 비가 차창을 때릴 때 내 가슴도 아팠다.
구치소에 도착 후 이런저런 조사를 받고 난 뒤, 다른 동료보다 일찍 48시간 만에 나왔다. 하지만 함께 했던 창원의 동료들이 나오지 못한 게 마음이 쓰였다.  먹지도 씻지도 못했던 77일의 기억에, 무작정 차를 타고 쌍용차 동지들이 있는 구치소 마다 들러 닭다리 등 먹을 것을 넣어주며, 동지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걸 찾으려 하였다. 그것이 5년 동안 복직 투쟁을 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구속자 가족의 면회를 돕고, 동지들과 가족들의 향후 일정을 관리하는 게 나의 첫 번째 일이 되었다. 그러면서 참 많이도 창원에서 서울로, 평택으로 다녔다. 거리에서, 도로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는 지도 모른 체 다녔다.
그러는 사이 해고 전 현장에서 같이 일했던 또 다른 동료들은 나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니 그들은 더 이상 내가 보고 싶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현장에서 같이 일하며 웃고 이야기 나누던 회사 동료가 어느 날 구사대로 나타나 우리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자본에 의해 동료 앞에 적으로 나섰던 옛 동료였기에 마음이 더 아팠다. 아침 출투때는 그들을 보는 게 제일 힘들었다. 아니 싫었다. 함께하지 않음으로, 지금은 버스와 자가용을 타고 아침 출근을 하는 옛 동료였던 그 들이기에 싫었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아도 봐야하는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과는 나뉘어 멀어지고, 몇 몇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네가 어찌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복직 투쟁을 하냐’고 할 만큼 나를 바꿔 놓을 줄은 그 땐 나도 몰랐다.
하지만 나에게는 멀어진 동료 대신 생전 처음 보는 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났다. 쌍용차 해고자라는 걸 알고 서로 마음 아파하며 위로해주고, 같이 함께 해 주었던 사람들. “동지”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늘 같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힘이, 지금도 내가 투쟁을 접지 않는 이유이다.

그런 5년 이라는 시간이 나에게는 참 많은 일을 경험하게 한 겨울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평범한 일상에서 복직 투쟁을 계속하는 억세디 억센 나로 만들어준 겨울이었다.
24라는 죽음의 숫자,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지 않는 자본과 구사대, 자본의 하수인인 정권과 경찰, 가난한 노동자가 생각해 보지도 못 할 금액의 손해배상금과 구상권.
이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우리들의 송전탑 고공농성, 새누리당사와 산업은행의 노숙투쟁, 대한문 분향소에서의 투쟁 그리고 정우형의 단식과 지부 집단 단식.... 그리고 전국의 우리와 같이 또 다른 아픔을 가진 이들과의 투쟁.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기에, 그들의 아픔이 나와 같기에 어디든 달려갔다. 거기서 나는 “우리”를 다시 만났고, “동지”를 보았다.
불안과 초조가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에 기죽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에게는 “우리”와 “동지”가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다른 삶에 바쁜 생활이지만 우리의 아픔을 알고 함께 하려는 동지들이 많기에 “함께 살자”를 외치며 나는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이 시리디 시린 긴 겨울이 지나고, 그 옛날 그러했듯이 따스한 새 봄이 올 것이라 굳게 믿기에, 그 믿음을 함께해 줄 동지가 있기에 나는 이 겨울이 두렵지 않다.

늘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복직의 그 날까지 힘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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