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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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90호]다시 찾아온 갑오년에 농민전쟁의 발자취를 따라...

2014년 9월 20일, 여름이 이제 막 지나가려는 듯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토요일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정읍으로 향할 승합차가 기다리는 구암동 한전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기대로 가득 찬 가슴을 진정시키며 1박2일로 예정된 갑오농민전쟁 답사여행에 오기까지를 잠시 생각해본다.  
새 천년에 돌아온 갑오년을 맞이하여 마음 맞는 몇 명이 모여 ‘갑오농민전쟁’에 관한 세미나 모임을 결성하였는데, 평소 당에서 독서모임을 같이 하고 있던 정희누님이 별일 없으면 놀러 오라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갑오농민전쟁에 관한 책을 읽고 서로 의견도 나누고 그리고 박준성 선생님(이하 선생님)의 강의까지 들으며 답사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리고 드디어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답사하기 위해 15인이 승합차 두 대에 각자 몸을 실었다.
11시쯤 정읍에 도착하여 선생님과 합류한 우리는 황토현 전적지로 향하였다.
아직까지 한 낮의 열기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지만 걸음만은 씩씩하게 걸으며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전두환 정권 때 지어진 황토현 기념관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오히려 잘 되었다며 기념관 담 왼쪽 편에 보이는 언덕을 가리키시며 ‘저기서도 볼 건 다 보인다’시며 우리를 이끄셨다.
언덕에 올라 담너머로 보이는 전봉준 장군의 동상을 비롯해서, 왜 동상들이 하나같이 높은 곳, 우러러 봐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미술계를 일제강점기의 일본 유학파들이 이끌고 있고 도제방식의 학계 분위기로써는 스승의 방식을 답습하는 게 관례여서 같은 방식의 동상이 양산되고 있다고 한다. 일제의 그림자가 현대 한국인들의 무의식까지 침탈하는 거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해가 하늘 가장 높은 곳에 솟아오를 쯤에 언덕을 걸어서 조금 더 오르니 동학농민혁명 기념탑이 보였다. 거만하게 서있는 탑보다는 거기에 적힌 노랫말에 더 흥미가 당겼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가만히 닦아내며 속으로 읊조리니 새삼 가슴이 먹먹해왔다. 멋없는 돌덩이를 뒤로 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계단을 내려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농민군이 최초로 집결했던 말목장터를 들렀다가 만석보로 방향을 돌렸다.
저 멀리 지평선이 아련한 가운데 드넓은 배들 평야가 보이고 정읍천과 태인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예전 만석보가 있었던
자리에 이젠 유지비만 남아 있었다. 백성의 고혈을 짜려고 새 보를 만들고, 그것을 탄원하러 간 이들을 옥에 가두어 농민전쟁의 불씨를 당긴 역사적 사실이 현대에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해지는 입맛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유유히 흐르는 하천과 펼쳐진 평야는 답답한 가슴을 트이게 해주었다.
앉으면 죽산이요, 서면 백산이라 했던가? 그 이름만 들어도 흥분되는 백산으로 올라갔다. 말이 산이지 사실 언덕에 가까웠다. 여기도 큰 기둥 세 개를 박아놓은 듯한 동학혁명백산창의비가 있었는데 허여멀건 한 것이 싱겁게도 생겼었다. 이 놈의 기념비들은 왜 하나같이 크고 거대하기만 한 지... 천 여 명의 농민군이 죽창을 잡고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논과 밭을 보며 비장한 각오를 했을 생각을 하니 이마에 저절로 땀이 맺히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며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제대로 살곤 있는지? 잠시 이런 상념들에 잠겼다.
따가운 햇볕도 기분 좋게 누그러질 쯤이 되자 동학혁명모의장소로 가보았다. 선생님도 몇 년 만에 와보신다고 하셨는데 현판만 없다면 여느 시골의 기와집과 다를 게 없었다. 거기서 전봉준 장군과 농민전쟁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동그란 사발을 두고 원을 그린 다음 본인들의 이름을 기입하여 누가 주동자인지 모르게 했다 한다. 그리 크지 않은 집에 장정 20명이 모여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고 반드시 뜻을 이루자는 굳은 맹세를 했다. 이들은 자신, 가족, 종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세상을 바꾸려 행동했다.
사회의 모순을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안 들리는 척 입을 굳게 다물고 사는 게 삶일지. 비겁하고 소심하기만 한 나도 왠지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키가 높다란 해바라기만이 내 맘을 아는지 살짝살짝 숙인 고개를 흔들어 주었다.
첫 날의 마지막 답사지인 무명 동학농민군 위령탑에 도착했다. 어른 키의 3배만한 주탑 주위를 빙 두르는 일반 비석만한 보조탑들이 20여개 있었다.
주탑에 새겨진 그림은 쓰러져가는 동료를 안고 죽창을 앞으로 뻗으며 ‘물러서지 말고 나가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작은 보조탑들에는 밥, 죽창, 갈고리 그리고 농민군들의 얼굴들이 새겨져 있었다.
불퉁한 표정, 순진한 듯 부끄러운 표정 그리고 효수가 되었는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까지도 다 같이 함께였다. 하나하나 모두들 내 형, 친구의 아버지, 이웃마을 삼촌들의 모습이었다. 제 자식 입에 밥 숟갈 들락거리는 것과, 논에 물 들어가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여기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죽창을 들게 만든 세상사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장밋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에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자꾸만 산으로 가까워지는 해를 지켜보았다.
이 시간과 공간을 오감을 총동원하여 온몸으로 기록해야 할 듯이 꼼짝하지 못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을 지나 고창의 숙소로 천천히 운전대를 돌렸다.
달도 살짝 졸고 있는 듯 한 새벽 5시, 부스스한 모습으로 하나 둘씩 모여서 선운산 천마봉을 향해 길을 나섰다. 어둠의 장막을 뚫고 파도와 같이 쏟아져 내리는 별 빛에 반해 버린 나는 마냥 신나기만 했다. 1시간 조금 넘게 올라가니 천마봉에 도착했다. 날이 꽤나 밝아져서 일출을 놓쳤다고 실망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빼꼼 머리를 디밀었다.
아무도 말을 걸지 말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홍색 핏빛으로 망막 안을 가득 채웠다.
해돋이의 잔상이 우리를 붙잡았지만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투박하고 넉넉한 덩치의 마애불은 뾰루퉁해져 입술을 내민듯 한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가슴 속에 비기를 감추고 있다고 하여 동학의 접주였던 손화중은 그 비기를 꺼냈다 하여 세력을 단숨에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이 선정을 베풀고 백성이 살 만 했다면 이런 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는 않았으리라.
내려오는 길에는 활짝 핀 선홍의 꽃무릇이 반겨주었다.
올라가는 길에는 자신을 감추고 있다가 이제야 자신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는 듯 도도한 자태를 뽐내었다. 여기 저기 눈을 돌리면 어디든 피어 있었다. 뺨을 간지는 바람과 나뭇잎들이 날리며 스치는 소리에 평화롭고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즐겁던 여행도 마지막은 피할 수 없는지라 드디어 마지막 답사지인 고창 읍성에 도착했다.
갑오농민전쟁 당시 농민군이 여기를 점령하여 억울하게 투옥된 백성을 풀어주고, 주린 사람들에게 곡식을 풀어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서로 죽이고 죽는 그런 비극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냥 그렇게 자연과 함께 머물러 있기를 희망했다.
책 속에서 활자로만 익혔던 역사의 현장을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120년 전의 농민군의 심정을 완전하게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들이 함께 봉기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부러웠다.
비록 그들은 실패하였지만 우리들에게 스스로 바꿀 수 있음을,
포기하지 않아야 함을 보여주었다. 반복적인 일상에 묻히지 말고,
목표를 세우고 느리지만 끊임없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 스스로 부끄럽지 않는 나이기를 바래어본다.  <노동당 이성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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