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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호]메르스 어쩔수 없었다

최홍조 (결핵 연구원)

이 글은 메르스에 대한 이야기다. 또, 메르스와는 다소 무관한 우리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대규모 피해를 만들어 내는 사건들이 등장할 때마다, 한국사회의 불편한 사실들이 언론지면을 가득 채운다. 국회에서는 수많은 법안들이 준비되었다가 또, 폐기된다. 시민들은 택시에서, 술자리에서, 동네에서, 혹은 거리에서 불만을 조직하지만, 또 금세 일상으로 스며든다. 광우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4대강 사업이 그러했고, 작년 세월호 참사가 다르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메르스로 인해 바로 그 불편한 사실들을 마주하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 사이에서 너무도 익숙한 하나의 표현이 어김없이 배회한다.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 어쩔 수 없었다. 피해 받은 사람만 억울하지. 그 사이 텅 비었던 대중교통은 어느 샌가 다시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메르스라고 불리는 신종감염병에 초기 국가대응체계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어쩌면, 메르스가 전염력이 강하지 않은 질병이었고, 국내 보건의료 수준이 나쁘지 않았기에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초기 대응이 어떠했고, 정보공개는 적절했는지, 관료와 전문가의 협력이 잘 되었는지,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객관적 사실과 의견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더불어, 주치의 제도가 있었으면 1번째 환자의 조기진단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조기진단은 곧 확산의 차단 효과가 있으니 말이다. 공공의료기관의 수가 많았다면, 의심환자 적절한 격리가 손쉬웠을 수 있다. 전국의 환자들이 서울의 대형종합병원만을 찾고 다시 병원은 전국으로 감염인을 돌려보내는 구조가 아니었더라면, 그 병원들에서 시장통 못지않은 응급실의 북적임이 덜했다면 좋았을 거다. 착한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수익이 나지 않는 음압시설이 많았으면, 훈련받은 역학조사관이 충분했다면, 감염내과 의료진이 많았다면 분명히 좋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모든 상황이 갖추어진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메르스를 마주한 한국의 민낯과 지금의 처참한 결과는 객관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를 바라보는 너와 나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었을까?

6월 4일, 확진자와 정보공개  

정부와 언론에서 A, B, C, D 병원이 첫 번째 환자의 이동경로라고 설명했다. 휴대폰 문자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버젓이 병원의 실제 이름과 환자 정보가 떠돌아 다녔다. 사실인 것도 있고, 잘못된 내용도 많았다. 시민들은 앞 다투어 정부가 외면한 이 정보들을 전달했고, 믿었으며,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워갔다. 6월 4일 22시 40분, 상황은 변했다. 서울시장이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명의 메르스 확진자의 증상발현 이후 이동경로와 병원 이름을 공개하고, 1,500명이 넘는 접촉자가 있었다는 설명을 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던 대중은 대부분 환호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들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막연히 ‘너’의 문제로만 느끼던 메르스가 일순간 ‘나’의 문제로 격상하는 기분이었을 수도 있다. 1,500명이라는 숫자는 너와 나의 감정에 충격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이보다 조금 앞선 6월 4일 8시경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정보공개를 공언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6월 6일 저녁에 확진자의 직장과 자녀의 학교까지 상세하게 공개했다. 병원명 공개를 주저하던 정부는 하루 뒤인 6월 7일에 환자가 머물렀던 병원명과 체류기간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정보공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에서 누군가는 법조문을 따지며 정부의 정보공개 의무를 주창하고, 누군가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며, 또 누군가는 개인의 인권보호를 근거로 불편함을 드러낸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논란의 근거 주장은 모두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화 도구에 불과할 수도 있다.
환자 당사자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35번째 환자가 서울시 발표 이후 반박한 내용의 취재기사에서도 드러나지만, 발표의 긴박함을 고려하더라도 서울시는 당사자에게 상황공개의 필요성을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정보 공개로 인해 당사자에게 안겨질 유무형의 고통에 대해서도 고려했어야 했다. 성남시의 경우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확진이 아니라 선별검사에서 양성인 사람 본인과 가족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그/녀가 감내해야 할 피해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보공개를 둘러싸고 한국사회가 얼마나 전문적 지식에 둔감한지도 알 수 있다. 메르스라는 질병은 공기감염이나 지역사회 감염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있다하더라도 밀접 접촉이 아닌 경우 전염의 가능성이 극히 적다. 1,500이라는 접촉자 숫자와 직장과 자녀의 학교명 공개 사이에서 공기감염과 지역사회 감염은 마치 대중들에게 현존하는 위험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나의 옆에서 기침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두렵다. 저렇게 바이러스 덩어리를 품은 사람이 거리를 활보하는데, 그리고 그/녀의 자녀가 바로 나의 자녀와 같은 혹은 인접한 학교를 다니는데, 내가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느냐’ 는 너와 나의 반응에 1차적 책임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의 정보공개를 마주하며 박수를 보냈던 많은 대중들의 마음 속에 ‘35번째 환자’와 사전 설명도 없이 자녀의 학교까지 공개당한 ‘78번째 환자’가 겪었을 고통은 얼마나 차지하고 있었을까.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위험존재로 낙인찍으면서 나의 공포를 해소하고 있는지 되물어 보자. 그래서 정보공개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지를 수 없었다. 불편했다. 과연 정보공개가 ‘어쩔 수 없는 선택’ 이었는지, 정보공개의 범위가 적절했는지, 공개 과정에서 당사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세심한 조치에 대한 바람이 욕심일 수도 있다. 이미 한국보건의료체계에는 더 큰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결국 일방적 정보공개는 어쩔 수 없었다.

6월 6일, 메르스 중앙거점 의료기관과 퇴원한 사람들

메르스보다 오래도록 인류와 함께 살아온 대표적 감염질환으로 결핵이 있다. 90년대 이후 결핵환자에 대한 격리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국제학술지에는 반박 의견이 게재되었다. 실제 정책이 집행되면, 약물 중독자나 홈리스,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만 법이 엄격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격리정책의 피해는 취약계층만을 향하리라는 걱정이다.
메르스와 함께 최근에 나타난 상황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동일한 방향의 피해를 걱정하게 만든다. 6월 6일 정부는 메르스 중앙거점 의료기관으로 국립중앙의료원을 지정했다. 이에 따라, 국립중앙의료원은 기존의 입원환자들을 퇴원 혹은 전원 시키는 절차를 진행했다. 우려했던 상황은 발생했다. 에이즈 환자 13명은 모두 퇴원했고, 일부는 다른 병원으로 일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마땅한 병원을 찾지 못해 집으로 돌아갔다.
국립중앙의료기관은 취약계층 환자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그 많던 홈리스와 의료급여환자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정부도 지방정부도 병원도 답을 하지 못한다. 전국의 공공의료기관에서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지역 거점병원으로 지정되고, 기존 입원환자들의 소개 조치가 이루어졌다. 공공의료기관에 많이 입원했던 취약계층은 다들 어디에 있을까.
  
메르스 확산의 방지를 위한 격리정책은 피할 수 없다. 격리조치를 통해 확진이 예상되는 환자는 조기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고, 2차 전염을 차단할 수 있다. 예상컨대,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기관의 사회복지사들과 일선의 의료진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기존의 입원환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인근 병원을 알아보았을 거다. 그렇지만, 결국 그/녀의 동분서주도 개인의 노력인 것이지, 실제 퇴원 조치당한 환자들을 책임지는 정부의 노력은 아니었다.
거점병원의 한 관계자는 메르스 해결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양자택일의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양자택일의 문제로 여길지 아니면, 안타까움에 탄식만 나올지 알 수 없다. 결핵문제에서 취약계층은 격리당하여 권리를 침해받을 수 있지만, 메르스 사태에서 취약계층은 격리되지 않고,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당했다. 역시 취약한 한국의 공공의료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보건의료개혁이 성공한다면

메르스 사태를 중심에 두고 한국보건의료체계의 근본적 물음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동시에 해법에 대한 논의가 이미 시작되었다. 시민들에게도 메르스 사태는 배움의 공간이었고, 문제를 자각하는 시간이었다.
보건의료개혁이 성공한다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자. 그런 사회가 되고, 만약에 메르스보다 전염력이 강한 전염병이 국내에 유입된다면, 위에서 기술한 인권의 문제는 예방할 수 있을까. 적지 않은 예방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우선순위문제와 어쩔 수 없는 양자택일의 순간이 또다시 찾아오지는 않을까. 시민들의 공포와 혼란,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편견은 씻은 듯이 사라질 수 있을까.
작년 에볼라 사태에 대한 대응을 다룬 미국 질병관리본부 보고서에서 대응팀의 구성을 살펴보았다. 대응체계에는 정부 행정체계, 역학전문가, 진단전문가, 치료전문가에 더하여,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담당하는 부분과 심리상담을 포함하는 사례관리 부분까지 망라하고 있다. 감염인 당자사의 세세한 관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대한 고려와 혹시나 발생 가능한 제3의 피해까지 확인하고 대처할 수 있는 통합적 체계가 필요하다. 주치의 제도, 역학조사관 확충, 공공의료 강화, 신종전염병 대응체계 정비 등의 노력이 분절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메르스 사태 이후는 보건의료개혁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두고 논쟁하기 보다는 인권과 반인권의 가치를 두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공중보건의 위협에 맞선 다양한 국가주의적 보건의료정책이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했던 경험은 메르스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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