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산추련

		[64호]가해자이며 동시에 미국사회내의 희생자 조승희

1826년 파리의 가정집 하녀였던 앙리에트 코르니에.
그녀는 19개월 된 이웃집 딸을 돌봐주겠다며 아이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칼로 아이의 목을 잘라 한 손에는 몸통을, 다른 손에는 머리를 든 체로 서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찾으러 왔을 때 그녀는 ‘아이는 죽었다’고 말하고는 믿지 못하는 아이의 엄마에게 자신의 앞치마로 아이의 머리를 싸서 창문 밖으로 내 던졌다.
그녀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재판 과정에서도 비이성적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에게 ‘이건 사형감 이야’라고 말할 정도로 모든 사태를 정확히 인지했다. 강력한 살인의 충동! 당시 사람들에게 이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 사건 이후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32명을 사살하고 오히려 자신은 비디오로 모든 정황을 설명해주는 녹화를 했다.
수 개월전부터 이 사건을 저지르려고 준비한 듯 보인다.
그리고 그가 남긴 자료와 테잎은 보도가 될 수 있도록 미국 방송사에 우편 발송까지 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 역시 지극히 정상이었다.
일부 정신의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과대망상이란 포장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두 사건은 그 시대에 충격적인 일이었고, 왜 죽였을까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으로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정신적 상태에 대한 다양한 접근들이 시도되고 있다.

사실 나로서도 19세기에 발생한 지극히 정상인 그녀가 왜 이웃집 딸을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 했는지 알도리가 없고, 21세기에 발생한 지극히 정상인 그가 왜 함께 다니던 동료들을 죽였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그녀’와 ‘그’의 정신의학과 심리학으로 둘의 상태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 범죄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 당시의 결론이라면, 후자의 경우 그가 남긴 비디오와 자료를 통해서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것이다.

미국 사회를 우리는 열린 민족주의라고 부른다. 즉, 다민족 국가로 형성되어 어느 민족 출신이든 미국의 질서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면 기꺼이 미국 시민으로 편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인으로 받아들여진 경우에는 어디 출신이든 정치적, 경제적 평등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자유의 땅이 바로 미국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혈통적 민족국가 보다 훨씬 진보적이며, 민주적이며, 개방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9.11 테러 이전까지만 해도 그렇다. 그러나 9.11 테러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여럿이 모여 하나’라는 미 정부의 문구의 허구를 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여럿’은 결국 ‘하나’를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백인과 남성이라는 특권적 정체성을 지닌 미국인만 있을 뿐 ‘여럿’의 소수 민족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수 민족은 9.11 테러 이후 배제와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도 자발적으로 자신들이 얼마나 미국 사회에 동화가 잘되었는지를 공적인 장소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빌딩에서 죽은자가 미국 국민만이 아닐진데 아직 미국인으로 편입되지 않은 아시아 노동자와 아랍계 노동자도 있을 텐데 장례식은 미국의 국가 의식에 따라 거행되었지만 누구 하나도 문제제기 하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미국 내에서 살아서도 배제되었으며, 죽어서까지 배제된 것이다.
더구나 삐뚤어진 미국 애국주의는 아랍계 미국 시민들에게 행사한 폭력이 3주 동안 천여건을 넘었으며, 사법 당국은 아랍계 미국 시민들에게 초법적인 수사를 시도 했다고 한다.

이것이 미국의 본 모습이었다.
결국 어느 나라 보다 이성적이고 진보적일 것이라는 미국 사회는 결국 소수 민족의 배제와 소외를 통해서 자발적 복종을 하도록 더욱더 미국 애국주의를 강화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내 계급적 갈등이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주류인 백인(정확히 말하면 앵글로 색슨계)의 내부 갈등을 소수 민족과의 차별과 배제를 통해 해소를 하고, 또한 미국 사회에 포섭되기를 바라는 소수 민족에 대해서도 적절한 배제와 포섭의 전략으로 미국 국민 만들기로 ‘백인’ 미국 시민과 ‘비백인’ 미국 시민과의 관계를 통해 계급적 갈등을 무마 시킬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어느 역사학자의 말처럼 미국식 민족주의는 이렇게 강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계 미국인이었던 조승희가 남긴 테잎과 자료는 미국 내 소수 민족의 분노를 잘 나타내주는 하나의 자료라고 생각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행위가 옳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미국 사회내에서 백인과 남성이라는 특권적 정체성을 지닌 미국인을 없애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이러한 사건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계 미국인이었던 조승희는 일상 속에서 미국 시민으로서 배제를 당했을 수 있다. 이는 조승희 뿐 아니다. 미국 사회내의 소수 민족들은 항상 배제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저항하지 못한 채 가슴앓이를 하고 미국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했으면 어떨까? 혈통적 민족주의에 포섭된 한국 사회의 경우 미국과 어떤 방식으로 대처를 할까? 혹자의 주장처럼 이민족에 대한 타도를 외칠까?
사실 혈통적 민족주의든 열린 민족주의든 그것은 지배 권력의 국민 만들기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회내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미국보다 훨씬 더 타민족에 대한 적개심으로 발전 될 것이라는 우려는 지나친 상상일 수도 있다.
미국의 상황과 한국의 상황은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미국식 민족주의와 한국식 민족주의는 그 역사와 결을 같이 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소수 민족을 배제와 소외 시키는 방법으로 미국식 국민을 만든다면, 한국은 순수 혈통을 강조해 타민족을 배제와 소외 시키는 방법으로 한국식 국민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많은 주장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신의학자들의 권위를 빌려 인터뷰를 한 내용도 보이고, 미국 총기규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보인다. 그리고 간혹 인종적 문제도 보인다. 하지만 어느 사건이든 하나가 원인 일 수는 없다.
이 글 역시 그러한 수 많은 주장 중 하나일 뿐이다. 이 글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미국 사회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미국식 민족주의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이로 인해 소수 민족들의 시민적 권리는 묻혀질 것이란 것이다. 더 참담한 사실은 소수 민족들의 자발적 복종이 더러운 전쟁의 지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은 이것을 원했고 충분히 원하는 바를 이루어냈다.

결국 소수 민족들의 차별과 배제는 끊임 없이 이어질 것이며, 이로 인해 민족을 달리할 뿐 미국 사회내에 제 2, 3의 조승희는 언제든 나올 수 있다.

주미대사는 희생자에 대한 금식 기도를 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공대에 있는 추모비는 33개이지만 금식 기도는 32일을 하자는 것이다.
결국 조승희는 배제당한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수치였던 것이다.
하기야 세계적인 스타가 된 풋볼 선수에게는 한국계라며 칭송해 마지 않던 한국이 살인의 원흉이 된 조승희를 당연히 한국계란 사실을 배제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 그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미국 사회 내에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버지니아 공대 32명의 학생들과 조승희에 대한 명복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