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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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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학연, 지연,무리문화...권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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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
「미국 캔자스대 졸업증명서와 예일대 박사학위 등을 위조해 동국대 교수와 광주비엔날레 감독이 된 혐의(업무방해) 및 성곡미술관 공금을 횡령한 혐의」는 검찰이 신정아 씨에게 내린 혐의다. 2007년 하반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학력위조 폭로와 그 한 가운데 있는 신정아 씨 관련 스캔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는 적당한 안주거리를 찾은 양 떠들어대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신정아 씨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학력위조 나부랭이는 아니다.
신정아씨를 둘러 싼 다양한 상황은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학벌이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서 학벌을 위조하는, 그래서 위조된 학벌로 권력을 취해가는 상황은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어디서든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학연, 지연은 최고 권력자 선택에서부터 구석구석까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당연 뜨거운 감자는 김경준의 BBK 사건이라 할 만하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후보 간의 정책 경쟁이 뒷전으로 밀린 것도 유권자로서 서러운데, BBK 특별 수사팀의 발표는 더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특별 수사팀 왈 ‘이명박 후보와 같은 고려대 출신 검사들은 배제했다’라고 한다. 자신들 스스로 학벌위주의 연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꼴이다. 다음의 글귀는 더 재미있다. 선관위 주최의 ‘정책선거 실천대회’에서 각 당의 대선 후보와 대표들은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한다.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가 혈연·지연·학연 등 연고주의에서 벗어나 정책으로 경쟁하고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정책중심의 선거문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라고 말이다. 이 선언이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이야 누가 모르겠느냐 만은, 거꾸로 읽었을 때 그만큼 한국 사회의 최고 권력가를 뽑는 선거가 연고주의에 물들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씁쓸한 것이다. 대선이 이렇다면야 국회의원 선거나 지자체 선거는 더 말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연고주의의 뿌리를 찾기는 쉽다. 다음은 대기업에 취직한 어릴 적 친구가 술자리에서 펼쳐 놓은 이야기다. 신입사원 연수를 다녀왔는데, 서울지역 명문대가 아니라 지방대 출신이 자기를 포함해서 딱 3명이 더 있더란다. 안타깝게도 그 친구는 가족 중에 그 기업 계열사 이사출신이 있었고, 그 덕으로 합격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3명도 같은 이유로 신입사원 연수회에 함께 있었다고 했다. 명문대 출신의 학연과, 가족 관계의 혈연이 아니면 대기업 취직은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상황이 이 같으니, 제2, 3의 신정아가 나타나지 말란 법도 없다.
연고주의 - 현장도 예외는 없다.
현장으로 시선을 옮겨 보자. 신입사원이 채용되면, 회사 관리자들도 부산하다. 각 지역 향우회를 열고, 참석한 관리자들은 신입사원들과 친분을 쌓기에 여념이 없다. 술 한 잔 나누다 보면, 회사 힘든 이야기도 나오고 함께 잘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올 법하다. 혹은 같은 지역, 같은 학교 출신자들을 좋은 보직에 배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맺어진 친분관계가 임단협 시기에 적절하게(?) 활용될 개연성은 충분하다. 노동자의 단결을 깨트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요즘은 단순히 지연, 학연 뿐 만이 아니다. 조합원들이 즐기는 스포츠 관련 동호회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각 스포츠 동호회의 회장은 대부분 회사의 주요 관리다. 순수한 동호회 활동이 상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고 이미 그렇게 활용되고 있다. 자본이 노동자를 관리하는 방식은 이 같은 관계를 통한 또 다른 연고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는 않을까.
부끄러운 이야기 조금 더 해 보자. 노동조합활동은 학연·지연에서 자유로운가 말이다. OO공고 출신, OO군 출신별로 현장에는 무리지은 모임들이 있다. 학교를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현장으로 와서 모교의 선배들을 만나면 응당 반갑다. 비슷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모였더라도, 같은 동네의 기억을 나누고 있는 고향 선후배들을 만나는 것이 더 편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한 시절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사실을 즐기고 나눈다는 점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런데, 굳이 이런 즐거운 모임들을 신정아 씨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까지 비꼬아 볼 필요가 있을까 반문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조합원들 조직화 할 때 ‘넌 우리 지역 출신이니 당연히 힘을 보태야 되지 않겠어’라고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는 않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노동조합도 하나의 권력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권력을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는 진보나 보수나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상황이 이쯤 되면 학력을 위조해서라도 권력에 다가서고자 했던 신정아 씨의 사건을 술자리 안주거리로만 생각해서는 안 될 듯싶다.
무리문화가 아닌 자발적이고 신념에 찬 공동체를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은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이 고민은 조합원들이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앞서도 말했지만, 같은 공간에서 공부해서 더 친근할 수 있고, 어린 시절 한 동네 살아서 즐거운 기억이 많은 사이끼리 친하게 지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다정한 학교 선후배, 고향 친구의 관계를 해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관계들이 힘을 얻는 데 악용되고 있다는 상황을 지각할 필요가 있다. 악용을 의도적으로 준비한 것은 아닐 지라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그런 학연·지연의 무리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리 문화에 익숙해져 갈수록 정의로운 결정을 못하고 인정에 휩싸이는 결정을 하지는 않는지 고민해야 한다. 분명 그런 결정의 뒷면에는 피해 받고 있는 또 다른 동지가 있을 테니 말이다. 자본이 노동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쓰는 무리문화를 우리가 똑같이 활용하고 있을 수는 없다. 무리에 의지하는 관계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신념에 찬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할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신정아 씨의 사건을 두고 술자리 안주거리 삼는 것은 이제 그만하자. 사건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 자신의 얼굴을 되돌아보고 같이 해답을 찾아 가보자. 술자리 안주거리로 이정도면 값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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