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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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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머리가 아닌 몸으로 고민하자 -성매매방지법과 노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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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김춘택
성매매를 보다 강력하게 단속하는 이른바 ‘성매매방지법’이 2004년 9월 23일부터 발효된 이후, 성매매를 둘러싼 논의는 한동안 화재거리가 되었다. 여기에는 역시 언론의 역할이 가장 컸는데, 조선일보 등의 극우 신문들은 이번에도 그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즉 탁월한 왜곡보도와 여론조작 그리고 물타기 등으로 성매매방지법을 흠집내기에 열심이었던 것이다.
흔히 말하는 ‘성매매방지법’이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별법’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물론 이전에도 성매매를 처벌하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라는 법이 있기는 했다. 이와 비교하면 이번에 제정된 성매매방지법은 크게 두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는데, 첫째 이제까지 대다수 훈방 처리되었던 성매매 알선자(일명 포주)와 구매자에 대한 처벌이 대폭 강화된 것이다. 둘째, 성매매 여성이라 하더라도 강요에 의한 비자발적인 성매매의 경우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또한 성매매 여성을 얽매는 가장 큰 족쇄인 '선불금'을 무효화하였다. 아울러 성매매 여성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원 및 자활 프로그램을 마련하였다.
물론 새로 만들어진 '성매매방지법'도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예외조항을 두긴 했지만, 여전히 성매매 여성을 처벌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자발적이냐 비자발적이냐를 불문하고 성을 판 여성은 처벌하지 않는 대신 성을 구매한 사람만을 처벌하는 스웨덴의 ‘성매매 구매 금지법’과 비교해 보면 그 문제점은 쉽게 드러난다. 성매매의 피해자인 여성들을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구분하고 나누는 것은 여전히 권력의 논리이며 남성의 논리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지원 및 자활 프로그램이 매우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언론에 의해 굴절된 형태로 보도되기는 하지만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요구는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매매방지법’을 흡집내고 그 실시에 훼방을 놓으려는 이야기에 우리가 동의할 수는 없다.
그 첫째는 남성 본능 운운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충환은 성매매방지법으로 “결혼 적령기에 있는 18살에서 30살 전후의 성인 남성들이 무려 12년 동안이나 성관계를 가질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는 정신나간 소리를 했다. 그러나 워낙 무식하게 표현을 해서 그렇지 좀더 이와 비슷한 입장을 지지하는 집단이 우리사회에는 강력하게 존재한다.
두 번째는 경제 논리다. 보수 신문들은 “성매매특벌법 은행도 유탄?”, “기생관광 침체 우려”등의 제목으로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냈고, 두산재벌 박용성은 “어느 사회든 하수구가 필요한데 모두 막고 참으라고만 하니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 엉망이 되고 나라 경제도 엉망이 됐다. 이상한 법이 시행된 뒤 모텔산업과 지방경제가 다 무너졌다”고 말하며 성매매 여성들을 사회의 하수구로 비하하고 성매매방지법을 이상한 법으로 몰았다.
여기서 좀 더 ‘오버’하면 색깔론까지 등장한다. 오로지 시장이 만능이고 자본가의 자유가 무한으로 보장되어야 가장 좋은 사회라는 신념을 가진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성매매 방지법에 대해 “자신이 믿는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남의 자유를 규제하려는 것은 좌파적 생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자유가 중요하듯이 포주들과 남성들이 마음껏 성매매 여성을 착취할 자유 역시 중요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리들이 어처구니없는 것 같아도 사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논리들이다. 그리고 지배자들의 논리 아래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다수 노동자들 역시 이러한 논리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성매매에 있어서 만큼은 지배자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남성 노동자라면......
이런 이야기보다 훨씬 세련된 것이 있다면,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보장을 운운하며 마치 성매매 여성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성매매방지법을 비판하는 논리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노무현의 이야기와 닮았다. 노무현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며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들을 비난하고 결국은 비정규직을 더욱 확산시키는 법률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처럼,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 보장을 이야기하는 논리의 대부분은 성매매 여성의 생존권과 그들을 착취하는 포주의 생존권을 하나로 여기며, 결과적으로 성매매를 허용하고 인정한다. 포주의 생존권이 아니라 진정으로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을 위한다면 성매매를 허용하고 인정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매우 불충분한 지원 및 자활 프로그램에 더욱 많은 정책과 예산을 쏟아 부으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는 성매매 여성들로부터 나오는 생존권 요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까지 구구절절이 이야기한 많은 논리들이 노동자들에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이 단지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사용되는 이야기들에 불과하다면, “이제 신포동 가기는 다 글렀네”라며 절대 진지하지 않게 주고받는 농담거리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성매매방지법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노동자들에게 머리가 아닌 몸으로 고민되어져야 할 문제다. 논리가 아닌 실천으로 나타나야 할 문제다.
남성 노동자들에게 성매매의 문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다. 우리는 일상 곳곳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성매매와 만나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노래방에 가도 함께 춤추는 도우미 아줌마들이 없으면 영 재미가 없어져버렸고,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의기투합하여 술값은 1/N로 나누기로 하고 단란주점에서 하룻밤 진탕 노는 것은 남성 노동자들의 일상의 한 부분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이제는 굳이 성매매 업소들이 모인 곳을 찾지 않더라도 인터넷 채팅을 통해 이른바 ‘알바’를 원하는 어린 여성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세상이지 않는가. 그리고 자본이 자신의 권력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듯이 노동자들의 일상적 성매매 문화역시 대를이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어린 노동자가 회사에 들어가 동료들과 형님들과 어울려 노동하면서 그는 성매매 문화를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며 당당한(?) 남성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노동자들에게 성매매가 너무도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어서 때로는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외치며 투쟁으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 보다, 노동자들 사이의 성매매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매매방지법에 대해 노동자들이 올바른 생각을 가지느냐의 문제보다는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삶 속에서 성매매가 왜 문제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성매매를 조금 덜 하려는, 안 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세상은 실천을 통해서 비로소 바뀌어 지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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