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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내가 살고 싶은, 일하고 싶은 공간을 돌려 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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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싶은, 일하고 싶은 공간을 돌려 달라.
홍 조
딱 스물다섯시간 걸렸다. 용산에서 사람들이 불에 타 죽어버리기 전까지. 그리고 딱 100일이 넘어 버렸다. 어릴 적부터 100일은 의미 있는 숫자였다. 태어난 지 100일, 이성 친구 만난 지 100일, 시험 남은 지 100일... 그리고 이제는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질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100일이 지나고 있고, 경찰에 쫓기지 않고, 번듯한 추모대회 한 번 열지 못한 지 100일이 지났다. 용산에서 벌어진 학살 전후에 자행된 정부의 무차별한 폭력의 문제와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 학살의 책임자 처벌, 그리고 남아 있는 구속?수배의 문제를 잠시 접어 두고 이번 글에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자.
올해 2월 말 경이었다. 여전히 추모대회를 불법적으로 허가 해 주지 않던 공권력을 피해 시위대는 불시에 서울역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허둥지둥하며 놀라는 경찰의 모양새를 지켜볼 새도 없이, 조금이라도 더 길을 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용산학살의 처참함을 알릴 수 있기를 바랐다. 묵묵부답도 열 받는데, 오히려 대책위 사람들 잡아가기에 혈안이 된 정부에 단단히 경고하기도 바랐다. 언뜻 보니, 맨 선두에서 달리는 금속 노동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경남 분들도 많이 있었다. 그래, 노동자들도 철거민들과 연대하기 위해 멀리서 달려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선언적으로 매번 노동자 집회나 민중 집회에서 노동자, 농민, 빈민, 전민중이 단결하자고 말하지만, 요즘 같이 이 같은 이름 붙여지기의 무의미함이 절실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노동자가 어느 새 농민이 되버리고, 노동자가 빈민이고... 그리고 굳이 언급하자면, 이번 용산문제는 사실 빈민이라기보다는 사장님들이었고, 세입자의 문제에서 출발했다. 투쟁의 초반에 이 같은 사실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잠시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투쟁이라는 점에서 빈민 따로 세입자 따로 라는 구분은 무의미해 보일 만큼, 정부의 탄압은 거세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그것도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진 경남의 노동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조금 더 생각해보자.
주거의 문제는 살 만한 공간에서 잠자고 먹고, 가족들과 즐겁게 지낼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비단 비닐하우스촌, 쪽방, 혹은 철거예정지역의 문제로만 주거의 문제를 소급해 버리면 안 된다. 물론, 가장 극단적 위험에 노출된 경우가 바로 위의 경우는 맞다. 그래서 이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주거의 문제를 조금 더 쉽고도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가가기 위해서는 더 큰 그림을 가지고 바라보는 편이 낳다. 흔히들 말하는 살 만한 동네는 이렇게 설명된다. 높게 들어 선 아파트와 단지 사이를 가로지르는 시원한 도로, 그 사이에 들어서 있는 학교들과 사교육의 첨병인 학원가들이 적절히 위치해야 한다. 걸어가도 좋은 가까운 거리에 대형마트 하나쯤은 들어와 있어야 하고, 그렇더라도 꼭 자동차 타고 물건 사러 가야한다. 햇볕 잘 드는 남향이면 더욱 좋고, 직장과 가까우면 금상첨화겠지만, 때로는 앞의 문제들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살 만한 집이고 좋은 동네다. 하지만, 덩달아 집값까지 올라가면 더욱 땡큐다. 졸지에 졸부 꽁무니라도 쫓을 수 있으니 말이다. 부산 연산동을 가면 전혀 다른 살 만한 동네가 있다. 지하철3호선 물만골역에 내리더라도 버스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물만골 공동체가 나온다. 영화 ‘1번가의 기적’을 촬영했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황령산 남쪽 중턱에 자리 잡은 마을은 슬쩍 봐도 앞서 장황하게 얘기한 살 만한 곳은 못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 마을은 8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대형개발 계획을 거부하고 주민자치를 이룬 곳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주민공동명의로 마을부지 매입이 이뤄졌고, 이미 동네 새마을금고의 최대 고객이 공동체 주민들이니 어찌 보면, 건실한 금융기관 하나를 장악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비록 쭉쭉 뻗은 아파트와 도로는 없지만, 잊혀 질만하면 마을잔치 비슷한 행사 열리고 몇 걸음만 나서면 수십 년 째 만나온 이웃들이 넘쳐난다. 우수생태마을로 지정되었고, 더 이상 아무도 이들에게 재개발하자는 유혹을 던질 수 없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아무도 함부로 도시정비를 한다는 말을 이들에게 던질 수 없다. 물만골 공동체는 스스로 현시대의 주류가 아니라 미래시대의 주류가 될 것을 실험하고 있다.
머물 곳 없는 수많은 철거민들을 몰아내고 지어 올린 아파트들이 넘쳐나서 이미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지 오래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더 많은 집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파트는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새로 지은 아파트의 거실불이 모두 켜지는 것은 아니다. 입주를 시작하고 한참이 지나서도 거실불이 켜지지 않는 세대가 늘고 있다. 세월이 조금 흘러 흉물스런 건물만 남아 있는 슬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몇몇 사람들의 지적이 거짓말 같지는 않다. 그전에 발 빠르게 움직여야 된다.
살기 좋은 마을을 여기저기 만들어야 된다. 새롭게 만들기 보다는 지금의 것을 가꾸고 지키는 편이 빠르다. 살기 좋은 우리 동네 만들기 동아리를 만들어 보자. 산추련 동지들, 사업장에서의 건강권 쟁취를 기본으로 해서 이제 안정적 주거를 바탕으로 하는 가정에서의 건강권 쟁취를 위해 서둘러야 한다. 여러 진보정당들은 물론이고, 노동조합에서도 조합원들의 안정적 주거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살기 좋은 동네 만들기를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 자연스레 노동자운동과 주거권 운동은 만난다. 일한 만큼 벌지 못하는 세상이다 보니, 혹여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집을 사고 팔며 횡재수를 노리는 경우도 있겠다. 동아리 만들어서 옆에 있는 노동자들을 설득하자. 동아리 잘 되면, 공동체조합을 만들어도 좋고, 의료생협을 만들어도 좋다. 일과 후나 주말이면 마을텃밭의 한 켠에서 씨도 뿌리고, 다 자란 채소는 생협마트에서 싸게 구입해도 즐겁다. 퇴직한 선생님은 마을 공부방을 만들어 볼 수도 있고, 퇴직한 자동차 수리 노동자는 내 차는 내가 고친다 배우기 학교를 해 볼 수도 있다. 전직이 농업이었던, 동네 슈퍼 아저씨는 주말마다 마을 텃밭가꾸기 강의를 해준다. 주고 받는 선물이 난무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용산학살의 참상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적법한 책임자 처벌과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무분별한 개발의 반대편에서 안정적 주거의 위협과 불건강의 공포에 휩싸이는 지금의 모습도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 두 번 다시 용산과 같은 참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준비하기 위해서 또 다른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주거문제를 공동체의 주거문제로 확대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대형마트보다 재래시장이 주는 저렴함과 정겨움의 가치가 우선하는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도 대안적 노동자 생태 공동체의 준비는 시급한 과제인 것 같다.
살려고 올라갔는데 죽어서 내려오는 현실이 아니라, 살기위해 조직하고 어떠한 개발자본도 사리사욕을 목적으로 우리의 공간을 훔치지 못하게 만들려고 조직하는 것이다. 내가 살고 싶은, 그리고 일하고 싶은 공간을 되돌려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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