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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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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베이징 올림픽 뒤 끝이 개운치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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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솔직히 난 8월의 절반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냈다. 하필이면, 새벽잠 설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을 만큼, 가까운 곳에서 올림픽이 열렸기 때문이다. 출근할 때 오전 경기가 시작하고, 퇴근할 때면 얼른 집에 돌아가 결승전을 봐야 했다. 1988년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을 난 한일 월드컵 준비가 한창일 때 알게 되었다. 그의 영화를 기억해내며 베이징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기에는, 그 동안의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리고 그의 다큐영화를 망각할 만큼 베이징 축제(?)에서 한국 선수들은 잘하더라. 방송의 분위기도 많이 변했더라. 시차가 적어 편성시간의 여유가 많아서인지, 열심히 했지만 상위권에 들지 못한 선수의 소개도 잦았다.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최초의 자력진출 카누 이순자 선수의 영상도 자주 보였고, 끝까지 바벨을 놓지 못한 이배영 선수는 방송사에서 준스타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응원하는 이들의 눈도 예전과는 달랐다. 메달과 관계없이 열심히 하는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네티즌들이 많았다.
첫 금메달은 유도의 최민호 선수였다. 자기보다 큰 키의 파이셔 선수를 들어 넘길 때의 짜릿함은 대단했다. 경기 종료와 더불어 최민호 선수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지나온 세월의 설움과 고통이 함께 겹쳐졌기 때문일까. 하지만, 나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하는 것은 오스트리아 파이셔 선수의 행동이었다. 싱글벙글 웃음이 자연스런 외모의 그는, 경기에서 이긴 최민호 선수를 다독여 주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최민호 선수를 추켜세웠다. 올림픽 위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순위집계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각 국가의 방송에서 임의로 순위를 정할 뿐이다. 그렇게 보면 올림픽의 기본정신은 순위다툼이 아니라 거창하게 부르짖는 세계화합, 혹은 잔치 정도가 아닐까. 파이셔의 행동은 잔치에서 승패를 떠난 즐거움이 느껴져서 좋았다. 근데, 이 느낌은 오래지 않았다. 안타깝게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금메달이 아닌 메달을 따는 한국 선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는 듯했다. 화려한 축제의 현장에서 발견한 그/녀들의 표정이 어쩌면, 한국 스포츠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경쟁해라, 이겨라, 1등이 아니면 축복받지 못한다.
숨 한번 고르고, 얼마 전에 봤던 영화이야기랑 함께 다시 올림픽을 생각해보자. 차인표의 지대로(?)된 연기를 보았던 ‘크로싱’... 탈북자 혹은 국내에서는 ‘새터민’으로 불리는 이들의 이야기다. 새터민의 영화화는 크로싱이 처음이 아니다. ‘국경의 남쪽’에서도 새터민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크로싱은 다르다. 북한 난민 지원 활동을 하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북한 주민의 실상과 탈북의 과정, 그 과정에서 붙잡힐 경우에 벌어지는 처참함은 실제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주 모티브도 실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니... 아무튼, 북한 난민의 문제는 가히 우리의 상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런데!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중국 정부에서는 베이징 인근에 살고 있는 각국의 난민들을 강제로! 본국에 송환했다고 한다. 그렇게 본국으로 송환된 난민들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북한 난민들은. 영화 크로싱을 보면 그/녀들의 삶이 본국 송환과 함께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지 알 수 있다. 베이징 올림픽의 달콤함 뒤편에는 난민들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최 직전까지, 각국의 시민사회에서는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바로 중국 정부의 ‘티벳’ 탄압 때문이었다. 그래서, 티벳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탄압은 세계화합을 위해 중단되었나? 뒤이어 터진 스촨 대지진이 우연찮게 올림픽의 순조로운 개최를 위협받던 중국정부에게 득이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자연재해로 안타까운 생명들이 위협받는 현장을 중국정부는 세계의 동정을 구하는 통로로 활용한 것이다. 그리고 티벳 활동가들의 탄압은 여전하다.
끝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영웅, 쥐박이 이야기가 남아있다. 마음에 안 들지만, 하는 일마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내뿜어서 요즘은 안쓰럽기까지 한 우리의 쥐박이. 베이징에서의 한국 선수들의 선전은 그대의 지지율을 30%대까지 올려줬다. 이 얼마나 화려한 변신인가. 그래서, 그 지지율 만큼이나 우리 삶은 행복해 졌을까. 눈물을 머금은 뉴코아 노동자들의 합의가 앞으로의 비정규직 투쟁 방향을 어둡게 하고 말았다. 내가 올림픽 경기에 정신을 놓고 있을 때,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단식의 길이는 하루하루 늘어났다. 철도 승무 노동자들은 얼마 전 다시 40m 철탑 위를 올랐고, 하이텍 노동자들도 다시 공장에 천막을 쳤다. 사노련 활동가들의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는 경찰을 장안의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탈북간첩 사건에 대한 의혹은 그 수사가 끝나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대운하를 다시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일관성 없이 터져 나오고, 주가와 환율은 엎치락뒤치락 하건 말건, 내 인생과는 별 상관없어 보인다. 다만, 어머니께서 들고 계신 펀드가 약간 걱정될 뿐이다. 아, 숨 찬다. 경찰의 촛불집회에 대한 대응까지 이야기하면 오늘 밤 새겠다.
뒤 끝이 개운치 않다. 새벽잠 설치며 올림픽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아했었다. 경기가 진행되는 중에도 주류 언론에서 외면하는 기사들을 접할 때, 한국 선수들의 선전에 흥분된 나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의지 약한 나는 올림픽 경기를 외울 정도로 보고 말았다. 수많은 시선들이 나처럼 베이징을 향하는 사이, 세상은 다시 10년이나 후퇴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기지개 한 번 쭉 펴고, 뒷목에 뭉친 근육 한번 풀고, 잠시 나가있던 정신 다시 챙기고, 힘들었던 이들에게 사과하고, 나쁜 짓하는 사람들 혼내주러 가보자. 아, 그래도 무차별 폭력은 금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무기는 정당한 저항을 할 수 있는 권리다. 무조건 비폭력을 외치는 무리들과 혼돈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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