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병은 신종 직업병?
얼마 전 LCD부품 업체의 외국인 여성노동자 5명이 소위 앉은뱅이병이라 불리는 질환에 걸렸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부산에서도 기계, 선박수리업체의 노동자 2명이 유사한 질병에 걸렸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한때 떠들썩했었다. 마치 신종 직업병이 새로 등장한 것처럼...
이 앉은뱅이병이라는 용어 때문에 사회적 이슈가 되었지만 사실 이 병은 노말핵산(n-Hexane)이란 유기용제에 폭로가 되어 발생하는 다발성 말초신경병증으로 과거부터 우리나라와 외국에서 이미 사례가 보고 되어 왔던 유명한 질환이다. 이 노말핵산이라는 유기용제는 무색의 자극성 냄세가 나는 휘발성이 강한 용제로서 과거부터 접착제, 인쇄, 코팅, 페인트 외에 섬유, 가구, 가죽제품, 반도체의 세척제에도 널리 사용되어 왔다.
외국에서는 신발제조공장과 인쇄공 등에서 발생된 사례가 여러 건 보고되고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1974년에 영등포의 한 신발공장 노동자 13명과 용산의 신발공장 노동자 4명에서 말초신경병증의 증상이 관찰되었고, 1999년에 타이어 공장에서 18년간 세척제를 사용하던 노동자에서 전형적인 말초신경염이 발생하였다. 또, 2002년에 자동차부품제조업에서 세척실에서 작업한 지 4개월된 노동자 2명이 다발성 말초신경병증을 일으킨 사례도 있다.
보통 노말핵산에 의한 다발성 말초신경병증은 환기장치도 없는 곳에서 고농도의 노말핵산에 폭로된 노동자에서 많이 발생하지만 노출기준 이하의 농도에서도 장기간 노출시에 신경검사상 이상이 보고되는 사례도 있다.
이 노말핵산에 의한 말초신경병증의 초기에는 양쪽 사지의 감각과 힘이 떨어지고 두통, 식욕부진, 현기증 등이 선행되거나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신경의 굵기가 굵고 길이가 긴 다리쪽의 신경에 먼저 침범되는 경우가 흔해서 소위 앉은뱅이병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물론 양측 팔에 먼저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폭로가 중지되면 경한 경우에는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심하게 중독된 경우에는 5년이상이 지나도 원래대로 회복되지 못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신발공장 등의 접착제에서 문제가 많이 되어 현재는 접착제에는 많이 사용되지 않지만 아직도 인쇄, 코팅, 세척 공정 등에서 폭로가 많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냄새가 많이 나는 유기용제를 다루면서 팔, 다리의 힘이 떨어지고 감각이 저하되는 증상이 있다면 한번쯤 의심을 꼭 해봐야 한다.
이번에는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되었지만 고농도로 폭로되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1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그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질병이 직업병인지도 모른 채 아직도 투병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번 일로 유기용제 중독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 한번 사회에 경종을 울려주었지만 우리에게 여러 가지 점을 느끼게 해준다.
그간 직업병이나 사고가 많이 생겼던 위험 작업은 대부분이 외부 하청업체나 사내하청/임시계약직 노동자, 이주노동자의 몫으로 전가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러한 현실이 불러온 필연적 결과이다.
이미 비정규직 및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문제가 심각한 상태에 처해있다. 이에 맞선 실천투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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